[과학의 향기] 태풍 이긴 강철 다리 '산들바람'에 와르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태풍에도 견딜 정도로 튼튼한 다리가 산들바람에 무너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실제로 1940년 11월 7일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 해협에 놓인 다리가 어이없이 약한 바람에 무너진 적이 있다.

미국 현대 건축 기술의 자존심을 건 건축물이었던 만큼 타코마교는 시속 190㎞의 초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런데 완공 석 달 만에 불과 시속 70㎞의 바람에 맥없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당시 다리의 상태를 점검하며 사진 촬영을 하던 워싱턴대 파퀴하슨 교수는 오전 10시쯤부터 불가사의한 일을 목격했다. 길이 840m의 타코마교가 가운데를 중심으로 꽈배기처럼 좌우로 비틀리더니 한 시간 후 중앙부터 부서져 내린 것이다.

이는 흔들림(진동) 현상 때문이었다. 강철.콘크리트를 포함해 이 세상 모든 물체는 저마다 고유한 진동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진동수를 갖는 소리굽쇠 둘을 연이어 놓고 한쪽 소리굽쇠를 치면 다른 한쪽도 같이 울리게 된다. 한쪽을 계속 반복해 친다면 다른 쪽의 진폭은 점점 커지게 된다. 그러나 다른 진동수를 가진 것을 놓을 경우 같은 실험에 소리굽쇠는 진동하지 않는다.

타코마교 붕괴에서도 이런 원리가 적용됐다. 양쪽 교각에 연결한 케이블에 다리가 매달려 있는 형태인 이 다리는 바람이 불 때마다 약간의 흔들림이 생겼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진동이 다리 자체의 고유한 진동과 일치하는 바람에 움직임이 점점 커지면서 결국 붕괴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렇다고 요즘 한강을 건널 때 바람의 공명 때문에 다리가 무너질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후 건설하는 다리는 모두 설계 단계부터 이에 대한 보완을 철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제공]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