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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러시아 … 쌍용차 수출 30%나 줄어 발 동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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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러시아발 한파가 몰려오고 있다. 우리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전자업체는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있다. 전체 교역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2.1%)은 적지만 러시아가 채무 유예(모라토리엄) 상태가 돼 유럽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 우리도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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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자동차산업이 영향을 받고 있다. 올해 1~11월 러시아의 자동차 판매대수는 222만 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6% 줄었다. 같은 기간 현대자동차는 4%, 기아자동차는 2%씩 판매가 감소했다. 여기에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현대차의 러시아 판매망에는 비상이 걸렸다. 현지 법인은 생산·판매망을 재점검하고, 러시아 외 지역으로 판로를 모색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러시아 판매 차량은 대부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에서 만들어 직접적 환율 영향은 적다”며 “하지만 루블화 가치 폭락에 따른 원화 환산 이익 감소와 부품 가격 상승 등으로 채산성이 나빠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쌍용자동차는 사정이 더 급하다. 쌍용차 수출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이른다. 1~11월 러시아 수출은 2만여 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이상 줄었다. 이에 따라 쌍용차는 이집트·방글라데시 등 16개국에 새 판매 채널을 구축 중이다. 쌍용차 관계자는 “내년 초에 나올 ‘티볼리’를 앞세워 신흥시장 개척을 확대해 러시아 판매 부진을 보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주력 수출품인 휴대전화에도 경고등이 들어왔다. 루블화 가치가 하락을 상쇄하려면 판매 가격은 올려야 하는데, 러시아의 소비 심리는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4와 LG전자의 G3는 러시아 현지에서 2만7000~2만8000루블(약 41만~43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루블화 가치 급락을 반영하면 루블화 표시 가격을 10% 이상 올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답답하긴 애플도 마찬가지다. 애플은 러시아에서 아이폰6·아이폰6플러스를 비롯한 스마트폰·태블릿 제품의 온라인 판매를 중단했다. 루블화가 널뛰기를 하면서 가격 책정이 아예 불가능해졌다는 이유에서다. 현지 생산 중인 삼성·LG의 TV도 사정이 여의치 않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러시아 기준 금리가 오르면 할부 금리도 같이 높아진다”며 “소비심리 위축으로 매출에 악영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가장 걱정하는 시나리오는 러시아 위기로 인해 유럽 경기가 위축되고, 유럽에 대한 수출에 타격을 입는 것이다.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의 내년 이탈리아 성장률 전망치는 0.2%다. 그런데 러시아 수출이 20% 줄면 이탈리아 성장률은 예측치의 절반인 0.11%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

 유럽이 다시 흔들릴 경우 긴 불황에서 벗어나는 조짐을 보였던 조선업황의 회복도 지연될 수 있다. 대형 선사의 상당수가 유럽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수익성이 떨어진 상태인데 러시아 모라토리엄이 발생하면 러시아산 원유 수입과 자금 결제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러시아 모라토리엄 상황이 되면 한국은 러시아(-1.1%)보다 유럽(-1.8%)에 대한 수출 타격이 더 클 것”이라며 “이 경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0.6%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산업계의 걱정은 커지고 있지만 러시아 상황은 더 꼬여가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15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10.5%에서 17%로 전격 인상했지만 루블화 폭락을 막지는 못했다. 16일(현지시간) 한때 루블화 값은 달러당 80루블까지 미끄러졌다. 주가 지수인 RTS지수는 이날 12.3% 떨어졌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세다. 시장의 충격을 줄이고 루블화 값의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해 러시아 재무부가 17일(현지시간) 외환을 팔며 시장 개입에 나섰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세바스티앙 바브 크레디트 아그리콜 신흥국 통화전략 책임자는 CNBC 인터뷰에서 “루블화 값이 더 떨어지면 자본 통제 조치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영훈·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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