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의 꽃 최인호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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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인호의 신작 장편소설 「적도의 꽃」을 읽으면서 내내 머리속에 떠오른것은 「타인의 방」이라는 단편소설이었다. 때때로 이런 경험도 가질 수 있는것이긴 하지만 좀 기이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두 작품은 깊은 열매를 맺고 서로들 속에 풀어져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되었다.
아마 그것은 소외 때문일 것이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최인호의 문학출발지는 서로가 서로에게 타인으로 살아가는 도시이며 그것도 도시를 상징하는 구획된 지점, 일테면 병원이나 아파트가 빈번히 등장한다. 이 소설의 가장 특이한 점은 미스터M이라는 익명의 사내와 선영이라는 여주인공만이 등장한다는 점일 것이다. 두 주인공만의 등장으로써 이 방대한 소설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이 소설이 우리의 어떤 다른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끝내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익명의 사내인 미스터M은 우리들 중의 누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곧 눈치채게 된다. 그것은 하나의 각성이다. 우리가 아무런 반성도 갖지않고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는 도시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허망한 그림자의 움직임이며 삭막한 노예의 몸짓인지를, 그래서 그것으로부터 탈출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일면 충동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탈물질문명이라고 할까, 회복되어야만 할 인간성의 상징으로서 등장한다고도 보아지는 여주인공에 대한 그리움과 방황을 담은 뛰어난 문체와 영감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중앙일보사간·5백페이지·3천6백원> 김주연 (문학평론가·숙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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