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⑦사회변동] 신생 사회, 이젠 혁신사회를 꿈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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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교수 (서울대·사회학)

1960년대 한국은 신생국가이자 신생사회였다. 인구의 절반 이상은 농민이었고, 80%가 빈곤에 허덕였으며, 7명 중 1명은 문맹이었다. 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10명 중 1명도 안 됐다. 65년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 아프리카의 가나와 비슷했다. 그러던 것이 한국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선진국 대접을 받을 만한 위치로 부상했다. 세계 근대사에서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진입한 유일한 국가가 한국이다. 그러나 이런 유례 없는 발전을 위해 한국인이 치러야 했던 대가도 만만치 않았다. 분단의 한 축에서 한국은 당시의 신생국가들이 거쳐야 할 온갖 유형의 고난을 두루 겪었다. 좌우투쟁, 전쟁, 사상검열, 군사독재, 민주항쟁,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게 했던 수많은 경제위기들. 한국 사회는 이제 그 아득했던 시련의 경로를 조금 여유롭게 관조할 수 있다. 빈곤의 그늘 속에서 몸과 투지만으로 40년을 가꿔왔던 기성세대가 지난 인생을 돌아보듯 말이다.

역사는 각 세대가 암중모색 끝에 찾아낸 최종선택들의 집합궤적이다. 후세가 그것의 잘잘못을 가리고 평가할 수 있겠으나 되돌릴 수는 없다. 평가는 오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의지의 확인일 뿐이다. 압축성장이라는 말로도 다 담아낼 수 없는 40년의 숨 가쁜 고행 속에는 세계의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격변의 파노라마가 응축되어 있다. 인구의 절반이 고향을 떠나 도시 산업지역으로 이동했다. 학교와 공장이 세워지고 치안기구와 행정기구가 팽창했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기록하며 젊은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밤을 지새웠다. 항만과 교량이 건설되고 도로가 뚫렸다.

한국 사회는 빠른 속도로 중산층을 길러냈다. 산업화를 독려하는 독재정권과 교양을 갖춘 중산층이 충돌했다. 경제성장은 민주주의를 촉진한다는 정치학적 명제를 입증이나 하듯, 민주항쟁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80년대는 경제성장과 민주화 열망이 동시에 발화된 시기였다.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시민항쟁의 고비를 넘어 한국 사회는 비로소 밝고 투명한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2005년 한국 사회는 공정·합리·투명을 향한 또 다른 고통을 겪는 중이다. 지난 40년의 성과가 자유를 유보하고 이념적 다양성을 반납하고, 몸과 마음을 ‘증산·수출·건설’에 헌납했던 대가로는 결코 충분치 않을 것이지만, 여전히 고난의 계곡에서 눈물짓는 국가가 어디 한둘이랴.

돌이켜보면 독재와 부정부패, 반복되는 위기 속에서도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에 실패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지난 40년은 행운이다. 60년대, 세계 180개 국가 중에 자본주의를 실행했던 32개국에 한국이 끼여 있었다는 사실은 행운이고, 다른 신생국가들이 수입대체산업화를 선택했을 때 수출산업에 사활을 걸었다는 것이 행운이고, 민주화 이행에 수반되는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 행운이다. 이 우연한 역사적 선택 때문에, 육칠십대는 고향을 등지고 산업현장에 청춘을 묻어야 했고, 사오십대는 중산층 사회 건설을 위해 교양과 열정을 투여했다. 이제, 합리적 제도와 기초체력을 어느 정도 갖춘 사회를 미래세대인 이삼십대에게 물려줄 채비를 한다.

산업화·민주화를 향한 지난 40년이 그러했듯, 우리에겐 실패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품격 있는 민주국가와 민주사회를 구축할 수 있는 동력(動力), 그 천혜의 자질이 세대의 DNA로 유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가 부러워할 만한 세 가지 요소, 교육열기, 성취동기, 그리고 네트워크 사회가 그것이다. 40년간 쌓아올린 성공의 탑은 세 가지 사회적 요인의 상승효과였으리라. 그렇다면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지금 이 시각 미래의 세대가 출발시킨 새로운 40년도 필연적 성공을 예견한다. 지난 40년이 시련과 고난의 시대, 거듭되는 시행착오 속에서 더 나은 시간을 여는 학습과정이었다면, 새로운 40년은 행복의 시대, 풍요의 시대일 것이다. 또 그런 사회를 구축하고 물려줄 세대적 사명이 이삼십대에게 있음을 ‘세대간 계약’을 통해 확인해야 할 시간이다.

고백하건대, 한국의 현대를 가꿔온 기성세대는 국가와 사회 건설프로젝트에 동원된 ‘대중(mass)’이었다. 그런데, 미래세대는 ‘더불어 살고 있음’을 항상 자각하는 ‘공중(public citizen)’이어야 한다. 앞에서 지적한 세 가지 천혜의 자질에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공선에의 긴장’이 부가된다면, 지난 40년 세월에 응축된 것보다 두세 배 넘는 향후 변동의 속도와 질량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한국 사회는 40년 전 빈곤 속에서 꿈꾼 풍요와 품격을 공공질서에 체화할 수 있을 것이고, 한국은 세계를 주도하는 ‘혁신의 창고’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송호근 교수 (서울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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