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까지 간' TV 리얼리티 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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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의 리얼리티 쇼 '빅 브러더'에 28일 출연한 임신 7개월의 여성 타냐(27.(上)). 아래쪽은 매주 2명의 권투 선수가 싸운 뒤 진 사람이 탈락하는 미국 NBC 방송의 리얼리티 쇼 '컨텐더'의 결승전 장면. 이 프로그램에서 올 초 탈락한 한 선수가 자살해 충격을 던졌다. [라스베이거스 AP=연합뉴스]

네덜란드의 한 리얼리티 쇼(실제 생활 보여주기 프로그램)가 임신 7개월 된 여성을 출연시키면서 출산 장면을 방영할 수 있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시청자들의 관음(觀淫.훔쳐 보기)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선정적 설정을 서슴지 않는다는 비난에 시달려 온 리얼리티 쇼가 "드디어 갈 데까지 갔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문제의 프로는 엔데몰 프로덕션이 1999년 제작, 미국.호주.유럽 등 10여 개국에서 자국판으로 각색 방영된 '빅 브러더'다.

'빅 브러더'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의 체제 감시자 이름이다. 지원자 12명을 100일 동안 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집에 가두고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여준다. 시청자 인기투표를 통해 회당 한 명씩 탈락시킨다. 최후에 남는 사람이 상금 40만 유로(약 4억8000만원)를 차지한다.

◆ "출산 장면 방영 용의 있다"=이달 초 개국한 '탈파'가 28일 방영한 '빅 브러더'쇼에는 임신 7개월 된 27세 여성 타냐가 등장했다. 출산 예정일은 10월 중순께다. 만약 타냐가 인기 투표에서 살아남는다면 프로가 끝나기 전에 아기를 낳을 수도 있다.

제작진은 "타냐가 프로 초반에 탈락할 수도 있으니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타냐의 출산 장면을 방영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제작진은 "의사.심리학자들에게 문의한 결과 병원보다 세트장에서 출산하는 것이 (아기와 산모에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타냐는 "내 아기가 나중에 이 사실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신한 몸임에도 담배를 피워 함께 출연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제작진이 선정성 비난과 의료사고 위험 등을 감수하겠다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시청률이다. 이날 '빅 브러더'는 150만 명이 시청, 주간 시청률 2위를 차지했다.

◆ 정부 대응=집권 기독민주당은 "오로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품위 없는 짓"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네덜란드 신문과 TV 토크쇼에서는 연일 이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사회복지부는 태어날 아기가 아역 배우로서 TV에 출연할 수 있는 '근로 허가'를 내릴지 검토 중이다. 사회복지부 관계자는 "위법 행위가 없다면 TV 방영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아기가 나오는 장면은 아주 잠깐으로 제한될 것"이라고 밝혔다.

네덜란드 아동노동법은 7세 미만 아동의 TV 출연을 총 4회, 회당 4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 한계 모르는 리얼리티 쇼=선정성과 상업성으로 빚어진 리얼리티 쇼의 부작용은 그간 꾸준히 지적돼 왔다. 올 초 권투 시합을 소재로 한 미국 NBC 방송의 '컨텐더'에서 탈락한 한 선수가 허탈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 충격을 던졌다. 미국 리얼리티 쇼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CBS의 '서바이버'도 첫 회에서 '퇴출'된 출연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폭스 TV가 방영한 '누가 내 진짜 아버지인가'는 입양 여성이 8명의 후보자 중 생부를 찾는 내용으로 "입양아와 생부모의 아픔을 교묘히 이용한 극도의 상술"이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한 케이블 방송이 '성형 미인'을 만드는 과정을 방영해 방송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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