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전문가들의 성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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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계경제는 지금 위기적 장황에 직면해있다. 그것은 단순히 성장과 투자가 정체되고 실업률이 전후 최고의 수준에까지 치닫고 있다는 현상적 위기라기보다는 오히려 같은 난관에 합심하여 대처하려는 공동노력의 부재, 이기주의에서 비롯되는 내면적 위기로 규정될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이런 유형의 위기적 상황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탓으로 그 귀결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그 과정에서 한가지 뚜렷해 지고있는 추세는 각국이 현재의 경제위기를 제각기 남의 탓으로 돌리고 점차 관리와 보호를 강화하고있다는 점이다.
지난주 초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국제경제연구소(소장 프례드버그스텐)주관 세계경제전문가회의는 현재의 경제위기가 다름 아닌 화합과 협조의 위기임을 지적하고 공동노력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성명은 세계경제가 위기에 처해있으며 불황의 늪에서 자생적으로 회복될 전망이 희박하다고 전망하고 선진각국에 대해 세계경기회복을 위해 경기부양책의 공동확대를 호소하고있다.
28명의 세계적 전문가들이 제시한 통찰과 처방은 현재의 상황에서 매우 적절한 시의를 얻고 있으며 이들의 합의된 문제의식은 곧바로 80년대 후반기의 경제적 성패와 직결되는 핵심적 요인들이다.
이 성명에서 지적한대로 현재의 상황은 세계경제회복이 조속히 실현되지 않는 한 무역전쟁의 가열화는 불가피하고 국가 간의 경쟁적 평가절하가 촉진되어 종국적으로는 국제금융 질서마저 붕괴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 같은 사태는 곧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진 각 국 경제의 상호의존성으로 인해 세계경제질서의 전면적 붕괴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이 이들의 통찰이다.
특히 세계경제회복의 관건이 되고있는 무역과 통화안정의 회복은 가장 시급한 대책이 필요할 만큼 위험수위에 근접해있다. 경제예측기관들의 추산으로는 내년에도 3∼5%의 미미한 무역신장에 머물 것이라는 예측이 나와있다.
이 같은 세계무역은 실질 경제성장률을 언제나 훨씬 상회해온 지난 30여년 간의 안정기에 비하면 크나큰 변화다. 세계무역의 침체는 개송국, 1차산품의존국들의 국제수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되고 그로 인한 국제자본이동의 정체와 외화누적이 국제금융의 연쇄적 경색과 은행 도산으로 확산되기 일보직전에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아래서도 선진공업국들은 주로 정치적 이유 때문에 과감한 대응책을 펴지 않은 채 이기적 보호정책으로 시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워싱턴 성명은 이 같은 경직된 선진공업국들의 이기주의에 경종을 울리고 그 귀결이 가져올 피해가 범세계적인 점에 주의를 환기시켰다는데 의의가 있다.
이들의 주장대로 선진공업국의 경우 영국·이탈리아 등 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인플레이션이 상당수준까지 진정됨으로써 경기정책 부재의 가장 큰 구실이 없어졌거나 약해졌다. 따라서 내년부터는 제한된 범위나마 경기확대정책의 여유를 가진 셈이다. 이 성명이 지적한대로 미국은 금리의 추가인하 가능성이 높아졌고 일본은 엔화의 평가조정, 재정정책의 경기 대책적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서독과 영국도 인플레진정에 따라 확대적 재정정책의 채택이 덜 어려워졌으며 국제고금리추세가 진정되면 각 국의 환율도 안정세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현재의 세계 경제의 위기는 선진공업국들의 합의된 공동노력이 뒷받침 될 경우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런 합의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얻어내느냐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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