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학교'에 쏟아진 음악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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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 서울대병원 어린이 환자들이 29일 어린이 병동 로비에서 열린 장애인 음악가 콘서트에 참석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정동 기자

눈에 종양이 생겨 한쪽 안구를 제거하고 나머지 눈에 항암 치료를 하고 있는 진우(6.가명). 부신 종양과 신경모세 종양으로 1993년 이후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희주(15.가명). 크론병과 백혈병, 심장결손을 똑같이 앓고 있는 영규(10.가명).정식(9.가명) 형제.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학교에 다니거나 장기간 입원치료를 받는 이들이 29일 점심을 먹고난 뒤 서두르기 시작했다. 어린이병원 2층 로비에서 열리는 장애인 음악가 4명의 합동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이날 공연에서는 선천성 사지 기형인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양, 소아마비 성악가 최승원씨와 대중가수 박마루씨, 시각장애인 클라리네티스트 이상재씨가 가요 '마법의 성', 가곡 '내 맘의 강물' 등을 연주했다.

희주는 휠체어를 타고 병실을 나섰다. 희주는 항암 치료로 얼마 남지않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쓰다듬어 빗고 사진기 달린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쥐었다. 진우는 제일 좋아하는 야구모자를 썼다. 감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공연이 시작되자 희주는 이희아양, 이상재씨 등이 연주하는 모습을 찍었다. 오랜 항암치료로 먹는 것을 다 토해내느라 몸도 마음도 지친 희주는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희주는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간간이 학교에 다녔지만 지난해부터는 이마저 다닐 수 없게 됐다. 12년 동안 학교.친구보다 병원이 익숙했다. 희주는 "병원에 입원한 횟수는 수십 번이라 셀 수가 없어요"라며 힘든 웃음을 지었다.

진우는 객석에 앉아 공연에 출연이라도 하는 듯 "도~레~미~"하고 큰소리로 목을 풀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목발을 짚은 박마루씨가 동요 '아기염소'를 부르자 진우는 손뼉을 치며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했다. 진우는 "병원 학교에서 노래 배울 때 말고는 병원이 항상 무서웠는데 오늘은 계속 재밌어요"라며 웃었다.

공연 전에 "나, 종양이 있대요"라고 말하면서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던 진우는 공연을 보면서 '병원은 무서운 곳'이라는 것을 잊은 듯했다. 99년 1월 생인 진우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나이지만 지금은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학교에서 국어.영어.미술 등 수업을 듣고 있다.

"어제 본 드라마에서 나온 노래 오늘 불러요?"라며 링거를 꼽고 병실을 나선 영식의 얼굴도 밝아졌다.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늘 "집에 가자"며 떼를 썼던 아이들이 리듬에 맞춰 손뼉을 쳤다. 수줍음을 타는 영식은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만큼 재밌다"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날 공연이 열린 서울대 어린이병원 학교의 신희영 교장은 "오랜 병원 생활로 지친 아이 중에는 음악 공연을 처음 본 아이도 있다"며 "아이들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고 말했다.

신 교장이 공연을 보고 병실로 돌아가는 희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도 어서 나아서 하고 싶은 것 실컷 하렴"이라고 말하자 희주가 오랜만에 웃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 병원학교란

장기간 치료로 정상적 학교생활이 힘든 소아암·백혈병 어린이를 위해 병원 안에 만든 학교. 퇴직한 교사 등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영어·국어·수학 등을 자체 프로그램에 따라 가르치며 오랜 병원생활로 사회성을 잃지 않도록 교우 관계도 돕는다. 서울대학교병원·부산대병원·인제대 부산 백병원·부산 동아대병원·경남 경상대병원·국립부곡병원의 병원학교에서 교육 받은 기간은 특수교육진흥법에 따라 학교 출석일수로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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