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의 진밭골 그림편지] 5월 10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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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늦둥이 밤나무도 햇잎이 돋았습니다. 입하(立夏)가 돌아오면 남겨둔 잡곡 씨를 모두 뿌린답니다. 봄보리 사이 고랑에 목화씨를 뿌리는 때도 이 때라고 합니다. 진밭골 농부 어르신은 '밤나무가 나비 앉은 모양만큼 필 때' 목화씨를 뿌린다 하였습니다.

현대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표준 시간에 의존하여 삽니다. 똑같은 기준시간만을 쳐다보며 사는 시대이지요. 하지만 자연에는 현대의 절대 시간과는 다른 상대 시간이 있습니다. 밤나무 잎처럼 우리와 더불어 사는 생물이 알려주는 시간 말입니다.

사계 변화에는 역리가 들어 있습니다. 이쪽을 보고 저쪽을 안다고 이릅니다. 여기 큰 강이 흐르면 저 멀리에는 큰 산이 있습니다. 천지사방 변화의 조짐을 기미만 보고도 척척 알아서 헤아린다면 서로 다툼이 없겠습니다. 견기이작(見機而作:순리를 알고 처신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이웃한 동식물이 살며시 알려주는 변화의 기미는 님의 목소리입니다.

김봉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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