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 참회의 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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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남쭉 항구도시에 살면서부터 나는 계절감각을 잃어 버린지 오래다. 12월에도 양지바른 언덕에 피어 있는 개나리꽃을 심심치 않게 대할 수 있기때문이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해서야 아이들에게 두툼한 털옷을 껴입히면서 겨울이 다가와 있음을 느낀다. 웃옷을 모두 벗어버린 한장의 달력앞에서 새삼 시간의 흐름을 절감하고 『섣달은 둘이래도 시원치않다』 는 말을 실감한다. 초조해지는 마음을 감출수 없다.
12월은 한해가 저무는 마지막 뒤안길에서 한결 풍요롭고 아름다운 빚깔로 설렘을 가져다 준다.
화려한거리, 예쁜 카드, 징글벨 소리, 감동을안겨주는 오라토리오.
만나는 사람마다 헤어지는 아쉬움 때문에 거리엔 애수가 깔리고 있다. 조금쯤 울고 싶고,조금쯤 쓸쓸해 지는 달이다.
12월이 가져다 주는 애상일까.
세월이란 모든 것을 휩쓸고 간 물결의 자국과도같이 공허롭고 황망한 것이어서일까.
아니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에서인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모든 것이 아쉽게 여겨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소중했다면 애초에 허무하게 흘려버리지 말것을 하는 후회가 뒤따른다.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는 한 해였다. 정신적인 삶보다는 물질적인 삶에 접근하여 안일과 평안함만을 꾀했던 한해였다. 어려운 이웃을 눈여겨 본적도 없었고 남의 슬픔도 나누어 가진적 또한 없었다. 항상 타산과 이기가 앞섰고 내 가족과 자기애뿐 여유라곤 조금도 없는 메마르고 각박한 생활이었다.
저물어 가는 한 해의 모퉁이에서 나는 회한을 뒤척이고 있다. 나의 진실은 어디 쯤에서 위선에 묶여 있는건가. 내 영혼은 얼마쯤 부패해 가고 있을까. 내 죄의 무게는 얼마쯤 되는걸까. 매년 한해를 시각하면서 다가오는 것은 회의와 성찰뿐.
기나긴 인생에 있어 한번씩 만나는 새해란, 삶의 나사를 손질하며 정리해보는 기회다.
또 생에 거둠과 의욕과 희망을 가겨다 주는것 같다. 나는 조심 조심 다가오는 새해의 발짝 소리를 들으며 l982년에 참회의 기도를 드린다. 또 새해엔 진실되고 부끄럼 없는 삶일 것임을 다짐해본다.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부산시부산진구당감3동469의16 백양아파트3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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