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상을 주제로한 한일 일인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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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요즘 문예회관 대극장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모노드라머 두편이 공연되고 있다(8일까지). 즉 『어미』를 주제로 한 한일 두나라 극작가의 1인극이 경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공연이 흥미와 주목을 끄는 것은 야심적인 두나라 극작가의 대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식을 생각하는 두나라 모정의 뚜렷한 차이점 때문이다. 한국작가 오태석이 연서와 관련된 어느 학도병의 불운한 죽음에서 소재를 가져온 것이라면 일본작가 「이노우에·히사시」는 자기어머니를 토대로 삼고있다.
오태석의 『어미』가 자식을 위해 자신을 부정하는 희생과 헌신의 어머니상을 부각시킨것인데 비해서 「이노우에」의 『어미』는 모자의 개체가 투명하게 분리되는 어머니상을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두 나라 어머니상에 차이가 나는데 한국어미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끈끈하고 절대적이라고 한다면 일본어미는 비교적 에고이스틱한 것이다. 즉 오태석의 어미는 자식을 위해 참담한 형벌까지 자청해서 감수하고 자식이 죽은뒤까지 혼령을 쫓아 헤맨다.
모정 앞에서는 저승과 이승의 계선까지 붕괴되고 만다. 그러니까 한국어미는 자식을 자신의 우주로까지 인식하고 모정을 삶의 전체로 파악하며 인륜을 중시한다. 죽은 자식때문에 생활전체를 던져버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반면에 일본어미는 자신의 생존과 자기사업(신파극단장)을 위해서 자식을 과감히 버렸던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일본어미의 아픔과 슬픔은 말할 수 없는 것이고 모정 또한 강하다.
그런데 일본어미는 자신과 자식을 일심이체로서 객관화시키고 자식을 버린 슬픔과 죄의식을 예술로 극복하고 승화시킨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여기서 맹목적이고 본능적인 한국어미의 모정과 이성적이고 이기적인 일본어미의 모정에 차이가 나는 것이다.
사실 궁극적으로 모정에 있어서 동·서양이 다를 수 없고 더구나 동양의 한일 두나라 모정에 차이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일 두나라의 남성작가들이 그려놓은 어머니상이 얼마나 보편성을 띠느냐 하는 것은 의문이다.
그러나 두 작가들이 그려놓은 모상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차이점은 한국어미가 감정적이고 연에 끝까지 매달리는 과거 지향적이라고 한다면 일본어미는 매우 현실적이고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미래지향적이라는 점이다. 나는 여기서 어느 어머니상이 바람직한 것이냐 하는 것을 판가름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두 작가가 그려놓은 각기 다른 어머니상에서 윤리적 차원을 넘은 한일양국 사회발전의 어떤 내적요인이 보인다고 말한다면 논리의 비약일까.
유민영 <단국대교수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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