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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평화적 핵이용' 섣부른 찬성은 곤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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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4차 6자회담에서 가장 크게 부각된 것은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 문제였다. 북한 대표단은 줄곧 "왜 우리를 죄인 취급 하느냐, 우리도 평화적 핵 이용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모든 핵 활동의 폐기'를 요구하는 미국과 맞섰다.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발전용 및 연구용 원자로는 물론 농축이나 재처리도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남한 내부의 찬반논쟁을 유발했다.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북한은 동족' 또는 '믿을 수 없는 상대'라는 단순 논리로 찬성하거나 반대해서 될 사안이 아니다.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 문제를 짚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섯 가지의 분석 틀이 필요하다. 첫째, 남북한 관계 차원에서 본다면 지금까지 공들여 가꾸어온 남북관계의 후퇴를 막는다는 측면에선 6자회담에서 북한이 사활적 이익으로 생각하는 부분을 수긍해 주는 것은 나쁘지 않다. 둘째, 국제관행 차원에서도 그렇다. 농축이나 재처리는 핵무기 생산에 긴요한 군사적 시설이지만 핵연료 생산, 핵자원 재활용,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친환경적 처리 등을 위해서도 필요한 평화적 시설이기도 하다. 핵확산금지조약(NPT) 같은 국제조약도 감시.감독을 요구할 뿐 보유 자체를 금지하지는 못한다. 현재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특정 국가들에만 농축과 재처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NPT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은 논의단계인 데다 불평등성 논란을 부르고 있다.

셋째, 한국의 평화적 핵 이용권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국은 남북한이 핵무기와 함께 농축.재처리까지 포기하기로 합의한 1992년 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라 농축과 재처리를 하지 않고 있다. 핵연료의 국산화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사용후 연료도 수조에 쌓아놓아야 한다. 공동선언은 당시 한반도 핵문제를 항구적으로 평정하려는 미국 구상에 따라 탄생한 것이지만, 한국의 평화적 핵 이용권을 잠식하는 것이기에 필자는 이 장치의 정착에 반대했었다. 게다가 서명 상대방이 핵보유를 선언하고 재처리 공장을 재가동하면서 사문화시킨 문서를 왜 한국만 지켜야 하는가라는 주권국의 체면에 관한 문제도 남아 있다. 이런 관점에선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을 인정하는 것이 후일 한국의 핵 이용권 회복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넷째, 그럼에도 한반도 안보라는 분석 틀을 생략해서는 안 된다. 평화적 핵 이용권이란 핵사찰을 기만하는 나라에는 언제든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의미하며, 이는 곧 한국의 안보문제가 된다. 90년대에 스스로 '전력 발전로'라고 밝힌 원자로를 이용해 핵무기를 개발했고 2003년 이후에는 아예 NPT에서 탈퇴하고 플루토늄 생산에 열을 올려온 북한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마지막으로 그 연장선에서 한.미동맹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동맹이 여전히 긴요한 시기에 미국이 극도로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에 대해 북한 편을 들어 한.미관계를 냉각시키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짚지 않을 수 없다. 안보와 한.미동맹을 중심에 놓고 본다면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은 섣불리 찬성해주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순리로 풀어 나가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우선은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의 폐기를 약속하고 군사적 핵 의도를 불식하는 검증조치들을 수용하도록 하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하며, 그렇게 된 이후엔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을 인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한.미 양국도 이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 문제는 장기적 안목과 치밀한 국익계산을 요구하는 사안이다. 다양한 분석 틀에서 경중과 완급을 따진 결과여야 하며, '우리 민족끼리' 또는 '대북 불신'이라는 단세포적 논리로 찬성하거나 반대한다면 이보다 더 한심한 일은 없을 것이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