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임] 도대체 날 위한 시간은 어디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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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집안 일의 끝은 어디일까. 누구를 붙잡고 하소연한들 속 시원히 해결해 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주부의 노고를 진심으로 알아주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매일 똑같은 생활, 닦은 곳 또 닦아도 챙겨야 할 곳이 생긴다. 아침이면 총 메고 전쟁터로 뛰어드는 군인의 심정으로 시작하는 집안일. 어느새 '나'는 사라지고 스위치를 켠 로봇 하나가 동그마니 서있다. 세탁기 돌리고, 설거지를 끝내고, 옷가지 정리…. 이제 숨 좀 쉴까하면 아이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간식 챙겨주기 바쁘게 저녁 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렇게 1년 365일을 살고 있다. 단 하루 만이라도 남편이 대신할 수 있을까? 하긴 대충한다면야 아이들도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다! 이렇게 푸념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나도 이제 줏대를 세우고 즐겁고 당당하게 살아봐야겠다. 내게 용기를 준 것은 우연히 알게 된 한 엄마의 이야기다. 그녀는 어떻게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는가.

우선 모든 하루 일과를 끝내고, 저녁 식사 후 정리가 다 되었으면, 가족들을 모아놓고 선언한다.

"엄마의 할 일은 오늘은 여기까지다. 이만 퇴근을 하니 각자 알아서 해 줄 것."

덧붙여서 그 뒤로 사용했던 물 컵과 간식 용기들은 세척해서 제자리에 놓아져야만 아침 식사 준비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둔다. 그래야 효과를 보게 될 테니.

일단 하루 일과를 마무리짓는 선을 긋는다면 그때부터는 '내 시간'이다. 하루 중 내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모든 것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물론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집은 안 돼'라고 실망하지 말고 가족에게 이해를 시키면 변화는 분명 시작되리라.

집안일도 그렇다. 그냥 할 수 없이 하는 것보다는 '나만큼 잘하는 사람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자.

언젠가는 주부라는 직업에서도 완전히 퇴직하겠지만, 항상 자부심을 가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족을 대하면 나의 후손들에게도 멋진 모습으로 기억되리라.

주부들이여, 이른 아침 첫 새벽부터 늦은 밤 마지막으로 문단속하고 잠드는 애처로움을 떨쳐버리자. 새롭게 출근해서 새롭게 퇴근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즐기며 살자.

정미원(주부통신원) <01932625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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