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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민병조직 곳곳에 할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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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베이루트에서 레바논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다보면 지금정부는『레바논정부가 아니라 서 베이루트정부』라는 우스개 소리 같은 말을 자주 듣는다. 모슬렘민병조직의 무장이 해제된 서 베이루트시내를 제외하곤 중앙정부의 행정력과 치안능력이 전국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같은 베이루트라도 동 베이루트에는 기독교민병조직이 건재하여 정부군이 재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기독교출신의 현「아민·제마옐」대통령의 사진이 모슬렘지역인 서 베이루트 여기저기 붙어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 반면, 동 베이루트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제마옐」대통령이 동 베이루트기독민병대의 완전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루트시내는 지난9월3개국 평화유지군이 진주한 이래 계속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서 베이루트의 경우 레바논정부군이 평화유지군의 도움을 받아 기능을 회복해가고 있고, 동 베이루트는 기독교민병대가 치안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모슬렘의용군의 본거지였던 서 베이루트에서 이제 총을 들고 거리에 나서는 사람을 볼 수 없게 됐다. 지난9월 사브라와 샤틸라의 팔레스타인난민학살직후 이스라엘군이 서 베이루트에 진주하여 가택수색으로 무기를 압수하고 물러간 다음 레바논군이 평화유지군으로 진주한 프랑스군과 함께 나머지 무기를 대부분 회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이루트의 민병조직이 모두 무장해제 된 것은 아니다, 팔랑헤당을 주축으로 한 기독교민병조직이 장악해온 동 베이루트에는 그대로 무장민병조직이 존재하고 있다. 시내에서 이들이 눈에 띄는 일은 별로 없지만 시내에서 외곽으로 빠지는 길목에는 군복차림의 팔랑헤당들이 오가는 사람을 검문하고 있다.
따라서 외견상 베이루트시내는 내란기간 중 유명무실했던 정부군과 치안경찰이 기능을 회복해가고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까지 1백 개를 헤아려온 민병조직을 모두 통제할 만한 능력을 중앙정부가 갖고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크게는 8천명에서 작게는 1백 명까지 이르고 있는 이들 조직은 거의가 레바논에 복잡한 종교 및 정치세력과 관련을 맺고 대립하고 있다.
이런 민병조직 중 기독교세력으로 대표적인 것이 극우성격의 카타예브, 친 시리아성향을 보이며 레바논북부지방을 장악하고 있는「술레이만」전대통령의 팔랑헤와 친미성향의「샤문」 전대통령의 팔랑헤다. 이중 카타예브는 8천명, 나머지2개는 2천∼3천명의 병력을 갖고있다.
모슬렘세력은 베이루트시내에 관한 한 세력이 위축돼있다. 지하로 잠적한 탓도 있지만 서 베이루트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낫세르」파의「무라비툰」「무슬림」좌파인 레바논국민운동은 레바논정부군의 무장해제에 순순히 응했다.『더 이상 이스라엘군에게 철수거부의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서 베이루트의 한 신문은 말했다.
그러나 베이루트의 외곽으로 나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시리아군과, 이스라엘군의 점령지역에서도 이들은「치안」을 확보하며, 심지어는 밀무역까지 해가며 돈줄을 확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관세수입의 절반 가량이 축나고 있을 것으로 추계 되고 있다.
기독교민병대의 경우 그들이 점거한 항구에서 거둬들이는 입국수수료는 연간 1억2천만 달러, 에드두바이에 항에서만 월 4백만 달러의 수입을 올린다는 것이 레바논당국의 비공식집계다.
레바논정부는 이 같은 종교세력의 국가업무대행 때문에 연간 약 3억 달러의 손실을 보고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수입원이 바로 민병대를 유지하는데 쓰이는 것은 물론이다. 종파에 따라서는 시리아나 이스라엘로부터 비공식무기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중앙정부로서는 이스라엘·시리아군이 철수한다해도 그 다음 이들 민병조직을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가장 어려운 문제로 남는다. 특히 동 베이루트에 근거를 두고있는 카타예브는 전혀 무장을 해제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이의 무장해제여부는 현정부의 신뢰여부와도 연관돼있다.
레바논정부는 이러한 무장조직들을 정부군으로 흡수·통합, 기독교도와 회교도의 비율을 반반씩으로 안배하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레바논정부가 약한 입장에 있는 것은 장비나 전투력 면에서 정부군이 각 민병조직을 압도할만한 능력을 갖고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바논정부는 현재 2만 병력의 정부군을 83년까지 6만 명,85년까지 10만 명으로 늘리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기간 중에는 물론 새로운 장비와 정부군의 군사훈련계획이 포함돼 있다.
이렇게 정부군이 강화돼 전국을 통제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다국적 평화군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레바논정부는 생각하고 있다. 다국적 평화군이 파견될 경우 물론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앓고 레바논정부군을 보조하는 형식으로 공동으로 활동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편이 될 것이다.
다국적 평화군의 역할이 레바논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순조롭지만 않을 소지는 많다. 시리아와 이스라엘군이 철수할 경우 민병대끼리의 싸움이 재연될 가능성은 높다. 민병대조직들이 모두 인접한 중동국가들을 배후세력으로 안고 있기 때문이다. 크게는 이스라엘과 회교권의 이익이 서로 충돌을 빚고 있으며, 회교권끼리의 이해도 일치돼 있지 않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철수한 뒤 민병대와 평화유지군이 충돌할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된다면 평화유지군을 보낸 국가와 민병대의 배후세력인 회교국가간의 마찰을 일으킬 위험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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