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신의를 지키며…」-이란사태 인질구출(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윌18일 일요일, 캠프데이비드에서 워싱턴으로 돌아온 나는 오후부터 핵심참모들과 함께 집무실에 자리잡고 마지막 단계에 접어든 인질석방노력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나는 거의 자리를 뜨지 않았다. 「먼데일」부통령과「로이드· 커를러」고문, 「밀러」재무장관등도 틈날 때마다 와서 일을 거들었다.

<페르샤만 비상경계>
분위기는 긴장돼 있었다. 사람들은 마치교회나 초상집에 온 것처럼 나지막한 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나 때로 누군가가 일이 울화가 치밀 정도로 자꾸 늦어지는걸 꼬집는 말이라도 내뱉으면 모두들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석방작업을 위해 우리 정부는 필요한 모든 힘을 동원했다. 각종 정부기구의 통신망들은 세계곳곳에 나가있는 우리 쪽 사람들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었다. 국무장관「에드·머스키」는 국무성 자기 방에서 알제 와 출 곧 연락했다. 알제에선「워런·크리스터퍼」국무차관이「벤·야히아」알제리외상을 통해 이란 측과 이어졌다 끊어졌다하는 협의를 벌이고 었었다.
「해릴드·브라운」국방은 펜터건을 지키며 인질들이 놓여난 후 자유의 땅에 안착할 때까지 폐르시아만 지역과 그 밖의 통과지점에서 취해야할 조처들을 준비했다. 미국 및 다른 관련정부들에서 인질석방작업에 관여하고 있는 수백의 사람들은 우리가 그동안 얽어놓은 느리고 거북스런 협상 메커니즘이 어서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기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고통스럽기까지 한 기다림이었다.
이보다 더 마음을 휘어잡는 드라마, 이보다 더 뒤얽히고 복잡한 폴로트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었다.
놀람과 어려움은 끝까지 우리를 쫓아 다녔다. 일요일오후, 다른 모든 준비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이란에 돌려줄 돈을 영국은행에 보낼 준비가 돼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때였다.「로이드·커들러」가 내게 다가와 나직이 말했다. 뉴욕의 연방준비은행에 자금이 없어 이란으로 돈을 보낼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연방준비제도 산하 은행들의 돈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소문이 퍼지기전에 실수를 바로잡을 수는 있었지만 까딱 하구 난처한 지경에 빠질 뻔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테헤란이 지금 몇 시인지 꼽아보고 있었다. 이라크와의 전쟁 때문에 이란의 모든 공항은 등화관제 중이었다. 그런데 알제리 측은 석방인질을 태운 알제리비행기들이 어둠 속에선 이륙하지 않겠다고 통고해온 것이다.

<〃밤엔 못 떠난다〃고집>
따라서 매일 테헤란에 해 가지는 시각(워싱턴시간으로 상오9시30분쯤)은 자동적으로 그 날 중 인질출발이 불가능해지는 마감시간이 돼버렸다.
월요일 이른 아침, 인질들의 건강진단이 간단히 끝났으며 모두 상태가 좋다는 보고가 알제를 통해 들어왔다. 뒤이어 항공기들이 출발준비를 마쳤다는 연락, 다시 미국인 인질들이 공항근처로 옮겨졌다는 전언이 들어왔다.
우리는 알제리를 설득한 끝에 꼭 필요한 경우엔 어둠이 떨어진 뒤에라도 이란을 출발하겠다는 잠정적 승낙을 가까스로 받아냈다.
나는 집무실 가까이 있는 조그만 사실의 책상 앞에 불도 켜지 않은 채 홀로 앉아 좀 쉬어 보려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엔 무언가 꺼림칙한 느낌이 늘어붙어 가실 줄 몰랐다. 미국과 이란이 서명한 협정서는 이란자산의 처리방법을 엄격하게 정해놓고 있으며, 이 과정이 끝나면 인질들은 석방될 것이었다. 모든 일은 잘 풀려 나가는 듯 했다.그런데 이 불안감은 무엇 때문일까….
전등을 켜고 나는 석방절차를 시간순서대로 내가 직접 적어놓은 목록을 찬찬히 살펴내려 가다가 마침내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이 이란 예금액을 되돌려주는데 필요한 기술적 지시사항을 이란의 중앙은행인 마르카지은행이 아직 보내오지 앉은 것이었다.
나는 곧「크리스터퍼」,「밀러」,「커들러」,「파월」(대변인),「머스키」등에게 차례로 연락해 확인해보라고 지시했다. 내 생각은 틀림없었다. 우리의 연락을 받은「벤·야히아」알제리 외상이 이란에 강력히 항의하며 알아본 결과 협상에서 합의된 내용에 승복하지 않는 이란의 은행관리들이 협조를 거부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다른 준비는 다 돼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도 마르카지은행 사람들은 필요한 서류를 발부하려들지 않았다. 참다못한 나는 이 은행간부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나는 이들이 반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됐다.
이란의 재무관계 기록들은 혁명과정과 미국에 의한 자산압류 등 혼란 속에서 분실되거나 낡아버린 형편인데, 지금의 협정내용에 따르면 이란 측은 그들에게 재산이 되돌려지는 과정에서 착오로 원금이나 이자액수가 잘못되는 경우에도 그것을 추궁할 수 없게 돼있었다.
테헤란공항의 알제리 항공기들은 출발준비상태에서 대기상태로 되돌아갔다. 인질들도 아마. 감옥에 되 넣어졌을 것이다. 이제 월요일 중 석방은 불가능해졌고, 나와 내 팀이 현직을 떠날 때까지 꼭 한번의 기회가 남았을 뿐이다.

<인질 재 수감위기에>
그 날 오후 각료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있을 때,「머스키」가 또 다른 나쁜 소식을 전했다. 상황은 긴박해졌는데도 중재를 맡고있는 알제리 인들의 태도는 오히려 활기를 잃고 느슨해졌으며, 이 때문에 평소 낙천적인「크리스터퍼」차관까지도 낙망해있다는 얘기였다.
우리는「크리스터퍼」로 하여금「벤·야히아」에게 미 정부당국자로서의 우리의 권한은 다음날 정오엔 소멸된다는 점을 깨우치도록 했다. 또 그 시간에 알제를 떠날 수 있게끔 비행기를 대기시키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이 같은 지시가 알제리와 이란에 가장 중요한 한가지게사실, 즉 인질석방엔 1윌20일 화요일 정오라는 진짜「시한」이 있으며 이 시한을 넘기면「크리스터퍼」도 나도 미국을 대변할 수 없으므로 협상은 처음부터 새로 시작돼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환기시킬 수 있기를 바랐다.<무단 전재·출판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