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키운 3남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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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어느 목사님이 아침라디오방송에서 매일 그때만 되면 『오늘도 참으로 축복받은 날입니다』라는 구절로 그 유창한 설교를 시작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나에겐 아침마다 눈을 뜨면 오늘도 또 어떻게 무사히 하루를 보낼 것인가 하는 걱정으로 편안치 못한 세월일 뿐이었다.
10년전 남편과 사별하고 3남매를 기르면서 먹여 살리는 일에 교육까지 남에게 뒤지지 않게 시키려니 뼈에 사무친 고생과 고통을 참아야했고 그런 고생 끝에 이만큼 키워 놓았다는 보람도 느낄 때가 간혹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경영하던 가게가 빚더미 위에 올라앉고 신세만 끼쳐오던 친지들의 눈치를 살피게 되면서부터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곤 하며 절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내 마음을 추스르곤 했다.
오늘 아침엔 4시구가 모여 밥을 먹으면서 『얘들아, 너희들 엄마가 무능하다고 생각지 않니. 잘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하고 너희들에게 열등의식만 갖게 하여 미안하다』며 자신 없는 엄마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 농담 섞인 어조로 진심을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딸아이는 『아니야. 엄마는 고마우신 엄마야. 제가 야간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낮에 일해서 오빠 등록금을 댈게요. 고등학교를 나오면 진짜 발벗고 나서서 돈을 벌어 엄마가 원하시는 설악산도 내가 구경시켜 드릴게요』하며 부족한 엄마의 입장을 이해해준다.
웃고 있던 큰 아이는 『어머니, 정말 미안해요. 매일 근심 걱정에 그늘져서 사시는걸 보면 가슴이 아파져요. 앞으로 5년만 더 고생해 주셔요. 제가 대학을 나오고 군에서 제대하면 편히 모실게요. 그리고 우리 3남매를 사나운 사자로 키우시지 않고 순한 양처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순간 목이 메어 밥을 삼킬 수가 없었다. 남의 집 문간방살이지만 그래도 10년을 고생하며 키워온 보람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자식자랑 팔불출이라 하지만 그래도 팔불출 된 내 마음은 흐뭇하기만 하다. 나는 앞으로 희망을 잃지 않고 팔불출이 되어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며 살아가리라 결심한다.
아침 방송에서 『오늘도 주님의 은총이 충만한 날입니다』하는 목사님 말씀의 깊은 의미를 이제야 어렴풋이 알 듯도 하다. <경기도 수원시 매교동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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