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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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실명제의 실시연기 결정으로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세법안은 어차피 국회가 대수술을 해야합니다. 어느 당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우리경제의 어려움부터 먼저 이해하고 당리당략을 배제한 세법심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상 처음 정부가 제출한 세율을 국회가 오히려 올려야하는 진기한 입장에 서게 된 박태준 국회재무위원장은 여야·국민 모두가 이 국면을 국가적 차원에서 이해해 주기를 호소했다.
『실명제를 둘러싼 정부·여당 측의 미숙을 시인합니다.
지하경제를 없애고 경제를 「거울」 같이 이끌겠다는 의지야 나무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다만 접근방법이 너무 극단적이다 보니 부작용이 생겼고, 마침내 정부 스스로 체면을 손상했습니다. 그러나 긴 눈으로 보면 있을 수 있는 시행착오이고 그 정도로 잘못을 그치게 한 점은 그런 대로 평가해야 합니다.』 국가의 기간산업인 포항제철을 일으켜 15년간 끌어온 경험 탓인지 경제에 대한 그의 인식은 무척 신중하고도 현실적이다. 미국은 지하경제가 GNP의 3%를 차지하고 있고, 영국(7·5%), 이탈리아(10%) 등 선진국에도 있는 현상을 우리가 하루아침에 뿌리뽑기는 어렵다는 논리.
국회가 오히려 세금을 올리는 작업이 무척 힘들 텐데요. 『원칙으로 하면 정부가 세법안을 일단 철회해 수정한 뒤 다시 가져와야죠. 그러나 실명제실시연기결정이 늦어져 그러기는 시간상 불가능합니다. 절차의 모순을 정치력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어요. 내 개인 생각입니다만 정부안을 올린다는 관점에서보다는 현행 세율을 깎는다는 자세로 심의에 임해야할 것 같아요.
정부예산안대로 내년에 5천5백억 원의 적자를 허용하면 몇 년 안가 적자 누증이 GNP의10%선에 육박하거든요. 지금 욕먹는 것이 나중에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란 점을 설득해야죠.』
-그렇다면 실명제발상에서부터 세법·예산안편성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자세에 큰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제5공화국이 발족 된지 2년밖에 안 됩니다. 짧은 전통에 정권교체의 틈바구니에 시달리다보니 관료들이 지나치게 권력을 의식하는 경향이 있어요. 나는 불만을 갖기 전에 그들의 불행을 이해하려 합니다.』
-정부·여당의 그같은 사후합리화를 야당이 이해하려 할까요.
『물론 논쟁의 소지는 많습니다. 상당히 시끄러울지도 모르죠. 그렇다고 여당이 욕을 안 먹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정부·여당이 솔직하게 털어놓고 「민생 우선」에 대한 야당의 이해를 구하겠습니다.
체면손상과 다소간의 불신을 각오하고 실명제를 연기시킨 민정당 아닙니까.
세금은 역시 공평해야 하고 그것이 곧 국민화합과 정치안정에 직결된다는 것을 여야가 함께 모색해야 합니다. 여야가 모두 당의 상처와 국가의 상처를 현명하게 저울질 할 줄 알아야 합니다.』
5·16주체로서 일찍이 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 권유도 많이 받았던 박 위원장이 한사코 정치를 기피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
『나만큼 정치를 비능률적인 것으로 보고 불신해온 사람도 드물 겁니다. 가끔 국회에 불려나와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노라면 「왜 저런 말을 할까」하고 의아스러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국회에 들어와 작년까지만 해도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했습니다. 이젠 조금 알 것 같아요. 경제를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보는데는 국회의 다양하고 객관적 시각이 꼭 필요합니다.』
겸직의원으로서 국회가 휴회중일 때는 물론, 개회중일 때라도 상오에는 반드시 포철회장실로 출근, 정상업무를 보고 하오에 국회에 나온다. 경영일선에 참여하는 것이 의정활동의 레이더 역할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
포항직원들 사이에는 포항시 효자동 사원숙소에서 독수공방을 오래했다 하여 「효자사 주지」로 통한다. 부인 장옥자 여사와 l남 4녀. <전육 기자>

<국회 재무위원장>
◇약력 ▲경남 양산 출신(55세) ▲조도전대 기계과 수료 ▲육사 6기(예비역 소장)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비서실장 ▲최고위원 ▲대한중석 사장 ▲포항사장·회장(현) ▲입법회의경재 제1위원장 ▲한 일 경제협회 회장 ▲국회 재무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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