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소자 교화에 몸바쳐 13년|불교 포교의 새길 연 박삼중 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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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자비의 전화」(서울(914)032l)-l.
서울 성북구 정릉 4동 숲 속에 최근 불교 조계종 일붕선종회 중앙포교원으로 새롭게 자리를 잡은 자은사 안의 한국불교 최초 개설인 이 인생상담 전화를 아는 사람은 아직 별로 없다.
『사회 속의 어둡고 불우한 구석을 찾아 자비 광명을 비추는 헌신의 대승보살행이 불교의 근본적 종교사명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불교 현실은 그처럼 외쳐대는 자비의 표방을 여일하게 뒷받침 해줄만한 보살행을 승속 모두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자비의 전화」를 개설한 자은사 주지 박삼중 스님(40)은 우선 자신을 포함한 불교계 현실의 문제점들을 냉혹히 비판했다.
부처님의 법을 따라 신앙과 죽음, 재물, 결혼, 양심의 갈등, 자녀문제 등 백팔번뇌와 온갖 세속 인생문제를 전화상담을 통해 제도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는 「자비의 전화」 개설을 위해 이미 연예인 심철호씨가 운영하는 「사랑의 전화」에서 3개월 동안 주1회 철야 상담의 실습도 마쳤다.
자은사 상담 전화의 상담시간은 하오 6시∼밤 11시까지-.
삼중스님은 현재 1대뿐인 전화를 곧 2대 더 증설하고 상담자도 자원봉사자를 받아들여 24시간 상담에 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각 종교의 「전화 상담」은 최근 새로운 포교 방법의 하나로 개발돼 세계 각국에서 날로 성황하고 있는 현대적 선교방식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미 70년대 중반부터 기독교가 「생명의 전화」를 개설, 운영해오고 있고 일반에서도 인생상담 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고해성사와도 같은 의미를 갖는 종교의 전화상담은 직접 대면해서 하기 거북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고 바쁜 현대생활 속에서의 「시간절약」이라는 잇점 등으로 널리 이용된다.
원래 삼중스님은 교도소 포교로 유명한 승려-.
대구교도소를 중심으로 전국 교도소를 누비며 형기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어 새로운 재생의 삶을 살도록 제도해왔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주지로 있던 계림사(경북 금능군 개령면 동부리) 경내 3천여평을 개간, 농장으로 만들어 교도소 출감 전과자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교도소 재소자들의 교화사업이나 자비행이 이젠 비단길을 미끄러져 가는 달변의 설법이나 막연한 정신적 구원만으로는 먹혀들질 않습니다.』
삼중스님은 13년 전부터 시작한 재소자 교화사업과 20여년의 승려생활에서 예리하게 관찰, 깊이 자각한 세태의 흐름과 현대인의 신앙욕구를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지금까지 10여명의 사형수가 그의 독경소리를 들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왕생했고 5명의 무기수를 해인사 강원에 보내 득도케 하기도 했다. 또 7명의 흉악범이 그의 설법을 듣고 참회, 출옥 후 승려가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전과자들이 감화를 받고 다시 악의 수렁으로 빠져들지 않고 새로운 인연을 맺어 정상적인 인생의 삶을 되찾는걸 볼 때 자신이 불교승려의 길을 택한 보람과 다시없는 생의 희열을 느낀다고-.
세속에 뛰어들어 중생과 함께 호흡하며 자신을 아낌없이 던질 수 있는 성직자 상이 목마르게 고대되는 한국불교의 현실을 끝내 절망으로만 몰아붙일 수 없는 희망적인 승려 상이다.
이상적으로는 자신의 생명까지 요망될 경우 내어 주는 게 종교인의 숭고한 인격이지만 현실적으로 생명을 제외한 정신과 육신의 모든 힘을 자비, 박애 등의 이름으로 혈연·학연·지연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희생」이야말로 바로 현대인들이 바라는 신앙에의 기대가 아닐까.
「받는 종교」보다는「주는 종교」가 설득력을 갖는 세속의 이기적인 현실을 외면할 때 불교는 물론 모든 종교의 현대적 존립은 어려워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며 삼중스님의 「자비의 전화」 옆을 떠났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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