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진짜 강자" 부상 단시일엔 어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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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련의 10월 혁명을 65번째로 기념하던 지난7일 「브레즈네프」를 선두로 해 수상「니콜라이·티호노프」(77)와 정치국원 「콘스탄틴·체르넨코」, 「유리·안드로포프」가 붉은 광장의 사열대위에 올라섰다. .
금년초 당 이론가 「미하일·수슬로프」가 사망한 이래 「브레즈네프」의 후계자 경쟁에서 선두 다툼을 벌이며「안드로포프」에게 늘 뒤져오던 「체르넨코」가 이번에는 「브레즈네프」의 바로 옆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소련시민들과 관측통들은 두 인물이 역학관계에 변동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축했다.

<만만치 않은 경쟁>
게다가 오랫동안 「브레즈네프」의 대리인 노릇을 하던 「안드레이·키릴렌코」(76)의 퇴진이 알려진 직후이고 정치국의 장로격인「아르비드·펠셰」(83)가 기념식 전에 볼참함으로써 궁금증은 더 했다.
그러나 바로 나흘 뒤인 11일 「브레즈네프」의 사망이 26시간 늦게 발표된 후 장례위원장으로 「안드로포프」가 나선 것을 보면 두 인물의 경쟁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여러 해 전부터 노쇠한 「브레즈네프」의 사망에 대비한 크렘린 내부의 권력투쟁설이 나돌았지만 대개의 경우「브레즈네프」의 권력을 강화하는 결과로 끝나곤 했었다.
그러나 금년 초에 들어서면서 소련지도층의 암투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종래와는 달리 「브레즈네프」가 신임하거나 강력한 후계자 물망에 오르던 측근 인물들이 잇달아 실각하면서 「안드로포프」와 「체르네코」의 존재가 전에 없이 부각됐던 것이다.
「브레즈네프」가 당 서기장직을 고수하고는 있었지만 그의 지위와 권위의 약화를 암시하는 일이 여러 차례 빚어진 것도 이 기간 중의 특징이었다.
이런 현상은 소련지도부가 겉으론 「브레즈네프」를 내세웠으나 사실은 막후에서 따로 정책을 결정해 왔으며 각자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뛰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브레즈네프」가 맡았던 직책은 소련연방 최고회의(의회에 해당) 간부회의장(국가원수)과 공산당 중앙위 서기장 등 두 가지. 이 중 간부회의 의장은 실권 없는 명예직이기 때문에 당 서기장이 누가 되느냐가 관심의 초점이다. 중앙위 서기국은 공산당의 내각에 해당하며 서기장은 그 총책임자다. 누가 서기장이 되든 그는 당의 최고정책 결정기관인 정치국원중의 한사람일 것이다.
정치국원은 정위원이 12명, 후보위원이 8명 등 모두 20명이다. 문제는 이들 중 누가 현재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느냐 보다는 누가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명문규정은 없지만 「스탈린」사망 후 지금까지 소련을 휘어잡았던 인물들의 전례로 보아 ▲정치국원과 당서기를 겸직하고 ▲러시아민족(우크라이나인·백계 러시아인포함) 출신이어야 하며 ▲당·정부에서 오랜 관리경험을 갖추고 있으면서 ▲군부의·배척을 받지 않고 ▲모스크바시당의 배척을 받지 않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등의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 모스크바시당의 배척을 받는 인물이란 전통적으로 모스크바와 대립관계에 있는 레닌그라드 출신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밖에 경제를 잘 알고 외교능력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건강도 한 요인이다.

<비밀경찰 경력이 흠>
현재 이러한 범주에 맞는 인물을 찾는다면 「안드로프프」 「체르넨코」와 「미하일·고르바체프」(51·농업담당 당서기) 「빅토르·그리신」(68)의 4명으로 압축된다. 「그리신」은 서기국원은 아니지만 모스크바시당 제1서기의 요직을 맡고있어 당내에 강력한 발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권력관계로 보아 「안드로프프」와 「체르넨코」가 가장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리신」의 경우는 두 강자의 세력이 팽팽할 경우 제3의 타협인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체프」는 한때 「브레즈네프」의 총신으로 오래 전 물망에 오른 적도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관록으로나 배경으로 보아 세 사람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안드로포프」와 「체르넨코」의 역관계는 서로가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지난 6개월간의 상황으로 보아 「안드로포프」가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나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체르넨코」의 경우 「안드로포프」보다 정치국원은 늦게됐지만 당서기직과 정치국원직을 먼저 겸직하며 당 기구의 살림을 맡아 훨씬 앞서 「브레즈네프」의 후계자 물망에 올라있었다.
그의 흠이라면 이미 70세를 넘었기 때문에 세대교체를 해야 할 크렘린의 입장으로서 그를 선택하는데 주저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만약 그가 일단 「안드로포프」를 제치고 부상하더라도 과도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즈비그뉴·브레진스키」 (전 미대통령 안보 보좌관) 등 일부 미국 전문가들도 초기엔 「체르넨코」가 후계자로 등장하겠지만 얼마 안 가서 「안드로포프」가 그 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본다.
이들이 지적한 근거는 「체르넨코」에 비해 「안드로포프」가 당내 세력기반이 넓고 깊으며 두뇌나 행동력 면에서「체르넨코」를 능가한다는 점등이다. 반대로 「체르넨코」는 너무 「브레즈네프」와 밀착돼 있고 정치국원 경력이 짧다는 점을 지적했다.
「안드로포프」의 경우는 금년 들어서야 당서기직을 다시 겸무하게 돼 「체르넨코」에 비해 뒤늦게 경쟁에 뛰어들기는 했으나, 오랫동안 KGB 의장직을 맡아 반체제 탄압에 공로가 크고 KGB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다는 이점이 있다.
소련에서 비밀경찰 출신이 당의 지도자가 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들어 KGB의 배경이 오히려 약점일 수 있다는 견해도 있으나 그의 경우는 「스탈린」시대 비밀경찰을 지휘했던 「베리야」의 경우와는 다르다.

<그로미코도 지지>
「베리야」는 「안드르포프」처럼 풍부한 당의 실무경험이 없었고 「스탈린」 치하에서 피의 숙청을 주도했던 인물로서 「스탈린」과 같은 l인 절대독재의 야심을 갖고 있어 당시의 소련지도층이 모두 두려워해 숙청됐었다.
「안드로포프」는 또 「레이건」 미 행정부에 강력히 대응할 수 있는 지도자를 바라는 「그로미코」외상과 「우스티노프」국방상의 지지도 받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드로포프」와 「체르넨코」, 또는「그리신」중 어느 누가 당서기장으로 부상하든 일단은 집단지도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추측이 강하다. 왜냐하면 「스탈린」 사후의 「흐루사초프」와, 그를 이은「브레즈네프」의 집권과정이 그랬듯이 지금까지 소련의 후계자 승계는 1인 지배에 맡기지 않고 서로 균형을 취해가며 각기 지위의 안정을 꾀하면서 총들을 피하는 선에서 결정돼왔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집단지도 체제는 항상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보여 실패하기는 했지만, 대신 이 지배체제는 지도자의 실각을 재촉해왔다.
「흐루시초프」가 실각했던 것은 급격한 「스탈린」 격하운동과 개혁에 원인이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더 큰 원인은 그가 다른 지도자들 위에 군림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권력과 기능을 분담해야할 다른 당 간부들보다 우위에 서려고 했고 특히 경제개혁 정책을 추진하며 군사예산의 삭감을 꾀해 군부의 반발을 샀을 뿐더러 요것조것 관여하지 않은 데가 없었다.
다른 것은 다 참을 수 있지만 참견 당하는 것만은 견디지 못하는 소련 사람들의 기질로 보아서도 「흐루시초프」의 실각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브레즈네프」가 18년간의 오랜 기간동안 당서기장의 직책에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실책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의 보수적인 체질, 다른 간부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권력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야 소련 당서기장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본=김동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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