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5년대의 한국문학사 간도중심으로 써야한다-인천대 오양호 교수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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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940년부터 1945년에 이르는 기간의 한국문학사는 간도를 중심으로 한 만주지방에서의 우리문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쓰여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양호씨(인천대교수·국문학)는 12일 인천대에서 있는 「간도연구의 의의와 민족사적 재인식」이란 제목의 연구모임에서 있을 「한국 근대문학사와 간도」라는 주제발표에서 이 기간동안 간도와 만주에는 안수길·유치환·손소희·김달진·이주홍씨 등 30여명의 문인들이 활약했으며 그들은 만선일보·개인작품집 등을 통해 우리말로 민족주의에 입각한 작품들을 발표하였다고 밝히고 이같은 작품들이 우리문학사에 이 시기를 대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씨의 이러한 주장은 지금까지 이 시기를 「암흑기」(백철), 「친일문학기」(임종국), 「비양식의 문학」(장덕순)등으로 본 국문학계의 흐름을 거부하고 민족문학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또 이 시기를 크게 공백기로 간주하면서 ▲1946년에 간행된 청록파 시인 박목월·조지훈·박두진의 「청록집」이 조씨가 「해방전 암흑기에 쓴 미발표작품을 한데 모았다」고 서술했고 ▲1948년에 간행된 『윤동주 시집』에서 수록작품이 41, 42년에 쓰여졌다고 말한 점을 들어 이들 작품이 이 시기의 공백을 메워준다고 생각해온 일부 국문학계의 통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오씨는 이러한 통념은 『윤동주나 청록파 시인들의 작품은 그 시기에 쓰여지고 발표되고 읽혀진 것이어야 한다는 역사로서 기술될 수 있는 문학사의 필수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있었기 때문에』냉정히 거부되어야한다고 말했다.
오씨가 이번 발표에서 40∼45년 사이 우리문학의 맥을 이을 수 있는 간도와 만주지방의 문학작품으로 든 것은 41년에 출간된 소설집 『싹트는 대지』, 43년 간행된 안수길씨의 소설 『배원』, 박계주씨의 소설 『처녀지』『사형수』『어머니』『딸따리족』, 42년 만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한 김진태씨의 『이민의 아들』등과 시집으로 42년 간행된 『재만조선시인집』, 43년의 『재만시인집』등이다.
이들 작품은 한국에서 이미 성도 이름도 문자도 빼앗긴 시기에 한국인의 성명으로 우리의 문자로 우리민족의 사상과 감정을 노래하고 있는 점만으로도 의미를 지니며 또 작품의 문학성으로도 뛰어나다는 것.
안수길씨의 『배원』은 『새벽』『벼』『목축기』『새마을』『원각촌』『성』등 12편의 중·단편이 수록된 4백여 페이지의 작품집으로 이 작품집이 나왔을 때 만선일보는 『다종다양한 조선인의 생활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운명을 남김없이 쓴 것이다』고 평했다.
또 『벼』는 만주인과 일인에 의해 억압당하는 우리 민족의 참상을 그린 것.
박계주씨의 『어머니』는 일본군으로 끌려갔던 학병의 고통을 다루었다. 오씨는 안수길씨의 작품세계가 지닌 문학사적 위치는 그의 작품 『북간도』에서 드러난바 있으며, 박계주씨도 후에 통속으로 흘렀지만 이 시기의 작품은 민족적이고 문학성이 높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시의 경우 51편의 작품이 수록된 『재만조선시인집』은 실향의 한과 민족의 애환이 생생하게 형상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오씨는 대표적 예로 김조규씨의 『연길역 가는 길』을 들고 있다. 「벌판 우에는 갈잎도 없다/고량(고량)도 없다. 아무도 없다/종루넘어로 한울이 끊어져 황혼은 싸늘하단다/바람이 외롭단다/머얼리 정차장에선 기적이 울었는데 나는 어데로 가야하노!」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느끼는 시인은 그러나 다음의 연에서 「나는 의롭지 않으련다/조금도 외롭지 않으이다」라고 망국·망향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오씨는 말했다.
간도를 중심으로 한 이같은 문학은 망명지의 이민문학으로 규정지어질 수 있으며 국내의 저명한 문인들이 총독부의 억압아래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성전이라 외치며 황국신민으로서의 신명을 바쳐야한다고 떠들어대거나 아니면 숨어버린 것과는 비교되지 않으며 그들이 이국 땅에서 조국을 생각하며 써온 이들 작품이야말로 우리문학사의 공백을 메워줄 것이라고 오씨는 강조한다.
또 간도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후 국권수복을 위한 전진기지의 역할을 한 곳이며 이 지역에서 문학활동을 한 문인들은 다같이 민족과 민족사에 남다른 관심을 지녔기 때문에 이곳의 문학활동은 새로운 조명을 받아야한다고 오씨는 강조한다.
오씨의 『간도를 중심으로 한 만주에서의 40∼45년 사이의 문학이 우리문학사의 정통을 잇는 맥이 되어야한다』는 주장은 앞으로 국문학계에서 많은 논의를 낳을 것 같다.
한국어로 문학을 했다는 점에는 이론이 없겠으나 ▲당시 만주지방도 일본의 세력권 안에 있었기 때문에 항일문학·민족문학으로 성숙할 수 있었겠느냐는 문제와 ▲그들의 작품이 문학적으로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라있느냐 하는 것 등이겠다.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이들의 작품이 더 발굴되고 분석되는 과정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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