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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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 집 사냥개는 어찌나 빨리 달리면서 사냥을 잘 하는지 한꺼번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지 못하도록 한쪽 눈을 헝겊으로 가려놓았다.』
신문이나 TV에 소개될 얘기지만 잠깐-, 미국 위스콘신주 벌링턴의 「오티스·C·헐레트」라는 사람의 「거짓말」이다. 그는 지난 50년 동안 세계 거짓말 대회를 이끌어온 자칭 대회회장. 지난 80년 1월 그 직을 물러나며 자신의 걸작을 소개한 것이다.
거짓말이 용서받을 수 있는 요건이 있다면 꼭 한가지. 에스프리나 위트가 있어야한다.
이것이 없는 거짓말은 범죄가 되기 쉽다. 그 역사적인 사건이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대지진 때 있었다. 이른바 「재일 조선인 폭동설」. 물론 일본사람이 지어낸 거짓말이었다. 이 때 무려 6천 4백 30여명의 한국인이 희생되었다.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공포유언」의 전율스러운 예.
사회심리학에선 유언을 원인별로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불만유언, 불안유언, 공포유언, 원망유언, 호기유언.
이 가운데 특히 원망유언이나 호기유언은 매스컴의 눈길을 끈다.
때로는 기장의 공명심과 스타가 되려는 「원망」에서 센세이셔널한 기사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지난해 미국의 권위지 워싱턴포스트지의 『「지미」의 세계』가 그랬다. 마부에 중독된 8세 소녀의 체험담을 꾸며 쓴 허구의 르포르타지였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사과합니다』라는 사설까지 쓰며 진상을 밝혀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권위를 더한층 높일 수 있었다.
미국의 또 다른 권위지 뉴욕타임즈지는 지난해 3월 7년 전 기사를 정정했다. 칠레의 쿠데타에 당시 칠레주재 미국대사 「E·콜리」가 관련되었다는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이었다.
이 경우 고의는 없었지만 진실을 진실로 밝히려는 그 신문의 집념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미국 매스컴에선 한때 뉴 저널리즘이 유행했었다. 소설식 서술방식의 기사. 60년대와 70년대, 미국의 어지러운 사회상이 만들어낸 현상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미국의 매스컴들도 역시 본령으로 돌아가는 경향이다. 모든 리포트는 자료와 현장이 중시된다. 프리시전(precision)저널리즘이 그것이다.
요즘 세간의 감동을 자아냈던 개가 물에 빠진 소년을 구했다는 화제(경남 함안)는 한 50대 주민의 유언에서 비롯된 오보였음이 본지의 현지 취재팀에 의해 확인되었다.
문제는 기자가 현장을 확인할 수 없는데 있었다. 지방기자가 없기 때문이다. 기자의 천국인 미국에서도 오보가 있는데, 우리는 기자가 있어야할 현장엔 때대로 유언만 있는 것이다.
이 풍진 세상에 그처럼 감동을 준 미담이 허담으로 끝난 시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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