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용택씨, 녹취록 외부 유출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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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용택(가운데) 전 국정원장이 23일 밤 서울중앙지검에서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청 사건과 관련한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국정원(옛 안기부)의 불법 도청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전직 국정원장과 안기부장에게 정조준됐다. 23일 천용택 전 국정원장 소환이 신호탄이다.

검찰은 지난주까지 옛 안기부 불법도청조직인 미림팀과 관련해 전.현직 국정원(안기부 포함) 직원들을 잇따라 소환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천씨가 공운영 전 미림팀장이 유출했다가 국정원에 반납한 도청 테이프 내용 전체를 파악했다는 진술을 확보해 이날 천씨의 시인을 받아냈다.

검찰은 "도청 테이프 내용에 대해 알았다"는 천씨의 진술과 "윗선에 내용은 보고하지 않고 폐기했다"는 이건모 전 국정원 감찰실장의 말이 엇갈리는 부분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 내용 유출에 초점 맞추는 천씨 수사=검찰은 천씨를 상대로 도청 테이프의 내용 유출 여부를 집중조사했다.

검찰은 천씨가 공씨로부터 감찰실이 회수한 테이프와 새로 작성한 녹취록을 받아 2주간 보관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천씨가 녹취록을 복사해 빼돌렸거나, 외부인사에게 알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천씨를 상대로 휴대전화 감청장비(CASS)에 의한 불법도청 지시를 했는지도 조사할 예정이다.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사용신청 목록이 발견된 CASS는 1999년 12월~2000년 9월 사용됐다. 결국 천씨가 원장으로 재직(1999년 5~11월)할 당시 개발됐다는 뜻이다. 천씨는 이에 대해 "정보기관이 다루는 가장 중요한 정보는 통신정보이며 이를 위한 기술개발을 하는 것은 범죄행위가 아니다"고 말했다.

천씨에 대한 사법처리는 23일 기소된 공운영씨의 예가 적용될 전망이다. 공씨가 재미교포 박인회(구속기소)씨에게 도청자료를 건넨 시점이 1999년 9월. 검찰은 통신비밀보호법의 공소시효(현재 7년, 2002년 개정 전까지 5년)가 끝난 공씨에 대해 공소시효가 남은 국정원 직원법상의 비밀누설죄(7년)를 적용했다. 도청은 불법이지만 국정원이 감청을 할 수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직무 연관성을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물론 천씨가 도청자료를 보관해오다 최근 5년 이내에 유출했다면 통비법 적용도 가능하다. 하지만 천씨가 CASS를 이용한 불법도청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나도 국정원법상 직권남용죄는 시효가 끝나 처벌할 수 없다.

◆ 전직 안기부장들은 처벌대상 안 될 듯=검찰은 김덕.권영해 전 안기부장을 상대로 미림팀 조직 및 운영에 관여했는지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이들이 불법도청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나도 처벌이 어렵다는 점이다. 적용 가능 혐의 중 공소시효가 가장 긴 국정원 직원법상의 비밀누설죄마저 공소시효가 끝났다. 검찰은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불법도청과 관련된 단서나 다른 적용할 혐의가 있는지 보겠다"고 밝히고 있다.

CASS가 사용된 기간인 99년 12월~2001년 3월 재직했던 임동원 전 원장과 후임인 신건 전 원장의 경우, 불법도청을 지시했을 경우에는 국정원법상 직권남용죄가, 묵인했더라도 형법상 직무유기죄가 각각 적용된다.

장혜수 기자<hschang@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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