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용택씨, 테이프 녹취 지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국가정보원(옛 안기부)의 불법 도청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23일 천용택(68) 전 국정원장을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천씨가 1999년 11월 안기부 비밀도청팀인 '미림'팀장 공운영(58)씨에게서 불법 도청자료를 회수하는 과정과 자료 내용의 대부분을 파악하게 된 경위 등을 캐물었다.

천씨는 검찰 조사에서 도청자료의 내용을 확인한 사실을 시인했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폐기 처분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검찰은 "천 전 원장이 직원 3명에게 공씨에게서 회수한 261개 테이프를 녹취하라고 지시했고, 녹취록 분량이 A4용지 100장 정도였다"며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이 천 전 원장에게 올라간 뒤 2주 후쯤 직원들에게 돌아왔다"는 국정원 측의 진술을 확보했다. 특히 검찰은 천씨가 공씨에게서 넘겨받은 도청 테이프 중 자신과 관련된 2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공씨와의 뒷거래가 없었는지를 집중 조사했다.

천씨는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면서 "일부 도청내용을 확인했으나 정보로 보기에는 쓰레기들이었고, 죽을 때까지 그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며 "공씨와 어떤 거래도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천씨가 국정원장 재직 시절(99년 5~11월)이나 퇴임 후 도청내용을 다른 곳에 유출한 사실 등이 드러날 경우 국정원 직원법상 비밀 누설 등의 혐의로 형사 처벌할 방침이다. 검찰은 조만간 천씨를 재소환해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검찰은 이날 공씨를 공갈미수 및 국정원직원법상 비밀 누설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문병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