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부진'딛고 마침내 첫 승… 강수연, LPGA 세이프웨이 골프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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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수연이 마지막 날 17번 홀에서 버디 퍼트를 놓친 뒤 몸을 비틀며 아쉬워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모습. [포틀랜드 로이터=뉴시스]

이번엔 강수연(29.삼성전자)이었다. LPGA투어에 발을 디딘 지 5년 만에 누리는 우승의 감격.

강수연은 22일 끝난 LPGA투어 세이프웨이 클래식에서 3라운드 합계 15언더파로 생애 첫 정상에 올랐다. 장정이 4타 뒤진 11언더파로 2위, 박희정이 10언더파로 3위에 올랐다. 한국 선수들이 리더보드 상단을 싹쓸이한 '한국 최고의 날'이기도 했다.

"그동안 무척 초조했나 봐요. 후배들이 우승할 때마다 축하를 아끼지 않았지만 '나는 언제 해보나'하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강수연은 LPGA 진출 5년 만에 '늦깎이' 우승을 차지한 뒤 "후련하다"고 털어놓았다.

샷 감각만으로 따진다면 박세리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 그였지만 미국 무대에선 그동안 우승과 거리가 멀었다.

강수연은 국가대표와 국내 투어 상금왕 등 엘리트 코스를 거친 선수. 2001년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상금왕을 차지했고,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3년 연속 시즌 평균타수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미국 무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00년 처음으로 LPGA투어 퀄리파잉스쿨에 도전했지만 조건부 출전권을 따내는 데 그쳤다. LPGA투어 첫 해인 2001년엔 고작 3개 대회에 출전, 3776달러를 버는 데 그치는 참담한 실패를 맛보고 국내 투어로 "U턴"하기도 했다. 이듬해엔 다시 퀄리파잉스쿨에 도전, 전 경기 출전권(풀시드)을 따냈지만 2003년 상금랭킹 33위, 지난해엔 45위에 그치는 아픔을 겪었다.

이제까지 LPGA투어에서 최고 성적은 2003년 다케후지 클래식에서 기록했던 2위.

"짐 싸들고 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렇지만 '이렇게 물러설 수는 없다'는 생각에 칼을 갈았지요."

1m74㎝의 큰 키에 정교한 아이언 샷이 장기다. "국내에서는 박세리한테 져본 적이 없다"고 말할 만큼 자존심도 강하다. 다소 호리호리한 체격 탓에 체력이 달리는 것이 단점.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2주 동안 국내에서 휴식을 취했다.

강수연을 이야기할 때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는 '필드의 패션모델'이다. 화려한 외모에 패션 감각도 뛰어나기 때문. AP통신은 '"검은색과 흰색 무늬의 카프리 바지를 차려입은 강수연이 환한 미소를 보이며 우승을 차지했다"고 소개했다.

정제원 기자

"마음고생 많이 했습니다" 강수연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강수연의 목소리는 통통 튀었다. "날아갈 듯한 기분"이라고 했다. 우승 직후 국제전화를 통해 우승 소감을 들어봤다.

-LPGA 투어에서 마침내 첫 승을 거뒀는데.

"말도 못할 정도로 기쁘다.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는 잠을 푹 잤다. 예전엔 '우승하겠다'는 욕심 탓에 마지막 날 경기를 망친 경우가 많았다. 이번엔 마음을 비운 것이 좋은 결과를 낳은 것 같다."

-장정.박희정 등 한국 선수들과 함께 최종 라운드를 했는데.

"절친한 후배들과 최종 라운드를 하게 돼 감회가 새로웠다. 그렇지만 지금은 외국 선수들과도 친하게 지내기 때문에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한국 톱스타 출신으로 LPGA 투어에선 우승이 늦은 편인데.

"미국에 온 지 5년 만의 우승이다. 그동안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연습할 때 주로 신경을 쓰는 부분은.

"퍼팅이다. 한국에서는 아이언 샷이 중요하지만 미국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퍼팅을 잘해야 한다. 미국의 골프장들은 그린이 커서 올리기가 쉬운 대신 퍼팅이 어렵다."

-언제쯤 우승을 예감했나.

"최종 3라운드 14번 홀. 나는 파 세이브를 했는데 장정은 보기를 했다. '이젠 뒤집어 지지는 않겠구나'싶었다."

강수연은 우승이 확정된 뒤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고생했던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던 부모님이 한국에 머문 탓에 우승의 기쁨을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강수연은 다음 주 웬디스 챔피언십에 출전한 뒤 다음달 2일 제주에서 개막하는 매경 여자오픈에 출전하기 위해 이달 말 귀국할 예정이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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