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볼모 5개월」|오토바이에 치인 국교여자어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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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교통사고를 당한 국민학교 여자어린이가 가해운전사와 부모를 두고도 지척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2개월동안이나 병원에서 지겨운 볼모생활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치료기간 2개월, 볼모생활 2개월반, 거의5개월동안 햇볕한번 제대로 쬐지못한 심재희양(11·응암국교5년)은 오늘도 서울서부병원(서울응암동 87의14) 60l호실 좁은 병실에서 기약없는 퇴원의 날만 기다리고 있다.
『하얀 솜털구름이 흘러갑니다. 병실창밖에 앉아놀던 새가 후르룩 날아갑니다. 내가 구름이고 새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꿈울 꾸어봅니다. 엄마 아빠가 보고싶고 학교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어도 나는 이 병실을 떠날수가 없기때문입니다. 다친 상처가 다 나았지만 이렇게 볼모처럼 병실에 있어야한답니다. 나는 벌써 두달. 밖이 그리워 매일 하얀 솜털구름이 되는 꿈을 꿉니다.』
어린소녀가 쓴 일기장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재희양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것은 지난 6월10일. 이날 밤10시쯤 동생 재열군(8·서울후암국교1년)과 함께 꼬마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골목길을 나서다 조도선씨(34·서울구산동192의1)가 몰던 오토바이와 부딪쳤다.
이 사고로 재희양은 왼쪽 다리가 부러져 전치 12주의 상처를 입었고 재열군도 전치2주의 상처를 입어 함께 서부병원에 입원했다.
재희양의 부러진 다리는 2개월만에 완치, 지난8월쯤엔 마음껏 뛸수있게 되었다. 재희양의 병실속 생활은 가해자 조씨가 치료비 전액부담이라는 합의를 못해 구속되면서부더 시작되었다. 리어카행상으로 하루6∼7천원 벌이의 아버지 심관섭씨(35)형편으론 2백70만원이나 되는 치료비를 감당할수 없었다.
가해자 조씨도 1백만원전셋방을 줄여 위자료30만원을 낸 하루벌이 노동자였다. 부모의 병원발길도 뜸해졌다. 퇴원독촉도 겁이 났지만 딸보기가 미안해 아예 병원찾기를 포기한 것이다.
처음엔 이방 저방 병실을 기웃거리며 간호원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낯선 병원세계에 재미도 있었지만 하루하루 똑같은 생활이 일기장을 채우면서 어린 마음에 외로움이 찾아들었다.
재희양에게 제일 반가운 손님은 환자보호자들과 함께 이따금 찾아오는 같은또래의 「꼬마 문병객」과 동생 재열군.
『우리집에서 치료비를 못 내기 때문인지 재이도 꼭 남의 눈을 피해 살짝 병실에 왔다간 금방 간답니다.』
재희양은 병원입구의 수위아저씨와 흰가운을 입은 아저씨들을 피해 숨을 할딱이며 숨어들어온 재열군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또 꼬마문병객들과 병상을 뒹굴며 놀다 이들이 훌쩍 떠나고나면 창밖하늘을 바라보며 운동장을 맘껏 뛰노는 상상으로 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병실 창밖 저 큰길 건너가 우리집이고요 그 옆에 학교가 있어요.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면 왈칵 울음이 복받쳐 한참 운답니다.』
치료기간과 「갇힌생활」을 합해 5개월 가까이 햇볕을 못본 환자복의 재희양은 창백한 얼굴에 눈망울만 초롱초롱 빛났다.
『옆에서 보기가 안타깝습니다. 어린게 얼마나 바깥공기가 그립겠어요 .』
재희양과 5개월째 한 병실에 있는 김금선씨(50·여)는 재희양이 하루종일 창틀에 매달려. 길건너 학교를 쳐다본다고 했다.
병원측도 재희양 보호자와 입원비 해결방법을 의논하고 싶으나 제대로 연락조차 안되는 실정이어서 퇴원수속을 못한채 하루5천원씩의 병실료만 계속 쌓이고 있다고 말하고있다.
『큰 상처를 이겨낸 재희양이 친구와 가족품으로 되돌아가 밝은 웃음을 되찾게 할길은 없을까』-. 가족과 병원, 주위 환자들의 한결같은 안타까움이다. <한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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