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장관·검찰총장 미묘한 갈등 기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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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한 천정배 법무부 장관(右)과 김종빈 검찰총장.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지휘가 내려와도 비합리적인 부분까지 승복할 이유는 없다."

김종빈 검찰총장이 19일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그는 또 "장관은 총장을 통해서만 (검찰을) 지휘할 수 있도록 검찰청법에 나와 있다. 장관도 검찰을 지키고, 총장도 외부 압력을 지키는 게 임무"라고도 했다. 일선 검사들이 특정 사건을 처리하는 데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거치지 않고 지휘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전날 천정배 장관이 간부회의에서 대상그룹 비자금 사건을 계기로 중요 사건의 경우 처리 내용을 장관에게 보고케 하는 등 구체적인 사건 처리에까지 직접 개입할 듯한 의사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검찰청법(8조)은 법무부 장관은 일반적으로는 검찰을 지휘할 수 있지만 구체적 사건의 경우 검찰총장을 통해서만 지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무위원인 법무부 장관이 일선 검사들을 직접 지휘할 경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훼손될 수 있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처럼 천 장관과 김 총장이 검찰 지휘권 등을 놓고 미묘한 갈등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 대상그룹 수사팀 감찰 여부 놓고 시각차=천 장관과 김 총장은 대상그룹 비자금 사건 1차 수사를 맡았던 인천지검 수사팀에 대한 감찰 여부를 놓고 분명한 시각차를 보였다. 대검은 감찰부 등 4개 부서의 합동 검토 끝에 지난달 25일 "1차 수사팀이 상부의 부당한 압력 때문에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에게 참고인 중지처분을 했다고 의심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감찰 조사에 착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법무부에 통보했다.

법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천 장관이 17일 열린 감찰위원회에서 약 50분 동안 감찰 조사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등 감찰 착수에 강한 집념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김상근(위원장)목사 등 민간인 위원 8명은 '수사 과정에서 큰 잘못이 없는 만큼 감찰 조사가 필요 없는 사안'이라고 결정했다.

감찰위원회 결정에 불만스러웠던 것으로 알려진 천 장관은 다음날인 18일 간부회의에서 대상 비자금 사건 처리를 가리켜 "거대 권력의 횡포와 남용"이라며 비난하는 지시문을 언론에 발표했었다. 이를 전해들은 대검의 많은 관계자는 "장관이 대상사건 하나를 놓고 검찰을 이렇게 공격해도 되느냐"고 반발했다. 결국 김 총장도 19일 "법무부 감찰위원회에서도 1차 수사팀에 큰 잘못이 있었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며 우회적으로 천 장관의 발언을 비난했다.

◆ 도청 내용 수사 여부를 놓고도 이견=천 장관은 18일 국회 법사위에서 "정.경.언 유착 근절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있다"는 말로 옛 안기부의 불법 도청 테이프 내용에 대한 수사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이는 도청 테이프 내용을 보고받지 않고 있으며, 내용에 대한 수사도 안 된다고 내부 입장을 정리해둔 검찰의 입장과 다른 것이어서 앞으로 천 장관과 김 총장이 어떤 합의에 도달할 것인지도 주목된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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