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 읽기] 오늘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심장에 온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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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하워드 진 지음, 윤길순 옮김, 당대, 167쪽, 9800원

부자는 더 잘 살게 되고, 없는 사람은 더 어려워지고, 몇몇 대기업만 시장을 쥐락펴락 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어두운 그늘이다. 국제화 시대엔 그 그늘이 더욱 크고 짙어졌다. 칼 마르크스가 환생한다면 이를 두고 뭐라고 말할까. 이 책은 저승의 마르크스가 잠시 현세로 돌아와 1시간 가량 청중 앞에서 떠벌인다는 가상의 1인극. 어리버리한 저승의 관료들 탓에 자신이 살던 영국 런던의 소호가 아닌 미국 뉴욕의 소호로 잘못 온 마르크스가 주인공.

그가 잠시나마 현세로 나온 이유는 짐작대로다. 자신의 이론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부의 독점이 심해지고 소외계층이 늘어난다는 자신의 예견이 정확히 들어맞지 않았느냐고 되묻는다. 또 자신의 이론은 세상 사람들의 오해와 왜곡으로 엉뚱하게 변질됐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그는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고 외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의 말 대로라면 사회주의 붕괴는 파쇼 공산당의 실패일 뿐 마르크스주의 자체의 실패는 아니다.

저자는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인 하워드 진. '미국 민중의 역사'로 이름을 날렸다. 이 1인극을 바탕으로 한 연극은 1995년 워싱턴에서 초연된 뒤 지금도 미국 각지에서 공연되고 있다. 희곡의 형식에 매인 탓인지 힘있고 냉철한 논리전개가 부족한 게 흠. 맛으로 치자면 좀 싱겁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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