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광의 과학 읽기] 기후가 진화를 낳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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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흔히 기후는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배경으로 인식된다. 날씨 변화는 간혹 야구경기와 같은 야외할동에 영향을 줄 뿐, 안전한 건물 속으로 들어오면 이내 창밖의 풍경쯤으로 간주되고만다. 그렇지만 얼마전에 개봉되었던 영화 '투모로우'는 기후변화로 어느 한 순간 지구의 북반구가 얼음에 뒤덮혀 인류 문명 자체를 위협하는 대격변의 상황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할리우드 영화 특유의 부성애 타령만 없었다면 말이다.

대표적인 복잡계(complex system)로 꼽히는 기후는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오랜 평형 상태와 짧고 급격한 단속(斷續) 기간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생물의 진화 과정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윌리엄 K. 스티븐스의 '인간은 기후를 지배할 수 있을까?'(오재호 옮김, 지성사)는 한마디로 수십억년에 걸친 기후와 생명, 그리고 문명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룬 책이다.

이 책은 기후가 단지 인간이나 생명활동의 배경이나 무대가 아니라 생명의 진화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어쩌면 인류의 탄생 자체를 가능하도록 자극한 원동력이었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일차적으로는 약 1400만년전의 백악기 이후의 한냉화로 인류의 발상지로 꼽히는 아프리카의 기후가 차고 건조해져서 숲이 줄어들고 광활한 초원지대가 형성되었다. 덕분에 유인원이 나무에서 내려와 여기저기 흩어져서 살아가면서 다양한 종으로 분화될 수 있었다. 또 한차례의 중요한 계기도 기후와 연관된다.

약 4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에 도착한 현생인류의 선조가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다시 찾아온 빙하기 덕분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은 몸집이 커서 더많은 먹이를 필요로 했고, 결국 불과 은신처를 이용할 줄 알았던 현생인류의 선조와의 경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후가 진화에 미친 영향은 단지 몇차례의 빙하기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친 변동이 진화의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은 기후를 둘러싼 과학자들의 논쟁과 복잡다단한 정치학을 균형적인 관점에서 보여준다는 점이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인간의 활동인지 여부를 둘러싼 과학자들 사이의 논쟁, 여기에 편승한 온갖 이익집단들의 갈등, 그리고 온실효과 가스 감축을 협의한 교토 의정서에 서명을 거부한 미국의 국가이기주의 등은 기후의 정치학이라 이름붙힐만하다. 결국 기후는 인류의 과거뿐아니라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힘인 셈이다.

<과학저술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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