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3) 제78화 YWCA 60년(99) 김갑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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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평북태생으로 이화학당 대학과를 졸업, 이화국민학교에서 5년간 교편을 잡았고, 26년 도미하여 종교교육을 전공한 김「폴린」선생은 미국서 돌아온 30년부터 YWCA 연합의 실행위원으로 40년 가까이 봉사한 분이다. 현재는 명예연합위원으로 계속 젊은이들을 격려해주고 도와주고있다. 필자는 그가 21년 이화국민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하던 그 첫해에 1학년학생이었다.
선생님은 음악을 가르쳤다. 61년전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그분이 책상을 지휘봉으로 두드리면서 박자를 꼭 맞춰야한다고 하던 말씀을 기억하고있다. 내가 음정과 박자에 대해 정확하다면 이는 일곱살때 김(폴린)선생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그 선생으로부터 배웠기 대문이다. 그의 양보심, 책임감, 민주적인 사고방식 등은 그를아는 사람이면 본받아야한다고 생각지 않는 사람이 없을것이다.
독신으로 지금까지 지내오신 김「폴린」선생은 아기같은 마음을 아직도 간직하고 계신다. 그는 어린이를 위한 성경이야기를 담은책 『에덴의 동산』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세계』『자연계와 어린이』 『세 큰왕의 이야기』 등 네편의 저서와 여러 편의 논문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Y를 이렇게 보고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너힉는 온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하신 그 명령을 그대로 준행하는것을 목적으로한 기관이다.』
세브란스의과대학 교수겸 세브란스병원장이던 분의 따님인 고황경박사는 24년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일본경도에 있는 동지사여자전문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후 33년 미국미시간대학 대학원에서 경제학으로 MA학위를 받았다. 계속 미시간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연구하여 26세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35년 귀국하여 이화여전가사과 과장으로 취임했을때 필자는 임문과 조교로 있었다.
고박사는 계슉 교육에 전념하여 일생을 바친 분이다. 그의 이력은 교육뿐 아니라 수많은 사회단체와 연구분야에서의 눈부신 활약을 들수있다.
61년 서울여자대학을 창설,0학장에취임한후 이를 알차게 키워나가고있다. 대한어머니회를 58년에 창설, 사회기관으로 발전시키면서 YWCA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아 30여년간 Y활동을 해왔다. Y지도자로 지금도 명예연합위원으로 계속 도움을 주고있다.
20년, 30년대에 피아니스트로 명성이 높았던 김영의선생은 한국의 현대 음악사에 첫폐이지를 차지하는 분으로 연주가로서도 홀튱했지만 음악교육에 있어서도 개척자의 첫손가락을 꼽을 수 있는 분이다. 29년 이전음악과를 졸업, 이화여고에서 6년간교편을 잡고 35년 도미하여 옴악의명문 줄리어드에서 4년간 수학하고둘아와 모교 이당에서 봉직했고 해방후에도 계슥, 73년 정년이 될때까지 실무를 맡았으며 정년후에도 계속 해어화재단의 상무이사, 현재는 이화학당 재단이사장직을 맡고있다. 예술을 하는 이로는 아주 드물게 사무에 밝고 명석한 두뇌를 갖고 정확하게 사물을 판단하는 분으로 회의진행애 있어서나 프로그램 운영에있어 감정적인 요소를 제거해주는 역할을 하는 분이다.
가정적으로도 부모님께 효도와 형제간에 우애가 모범적인 분이기도하다. 52년 신성모씨와 결혼하여 아내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두형제다.
자신은 자손이 없지만 친정조카들과 시댁자손들을 고루고루 도와주고 있다. 성경말씀대로 항상 베푸는 생활을 한분이다. 제자나 친구들 누구에게나 경신적으로,물질적으로 베풀어주는 분이다. 필자는 이화여고 3학년때 음악을 배웠다.
Y와의 관계는 56년부터였으며 근30년간의 봉사로 특히 지방Y를 육성하는데 많은 공헌을 한분이다. 지방의 자원(인적·재정적)부족을 돕는데 적극적이었다. Y의 귀중한 지도자의 한분으로 기록될만하다. 금년8월에 명예 연합위원으로 추대되었다.
명예연합위원은 연합회를 위해 오래 봉사하고 Y발전에 뚜렷한 업적이 있는 분을 추대하는 제도로 현재11명의 명예 연합위원이 었다.
지방Y는 지방Y대로 명예이사 제도가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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