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깊이보기 :10년 불황 미술시장

지금 형편 어느 정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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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올 상반기 세계 미술 경매시장의 매출은 22억 달러였다. 이에 반해 올 상반기 서울 아트페어의 매출 총액은 4억여원에 불과했다. 세계 미술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는데 우리네만 뒤로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양도세 법안이 폐지됐지만 요지부동이다.

미술시장의 회복을 위한 여러 대안이 제기되고 있으나 중환자를 살릴 처방으로는 약하다. 한국 미술시장의 건강 상태가 불치병 수준으로 깊어졌다. 흔히 얘기하는 유통구조 등은 이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미술시장은 미술품을 구매하는 컬렉터 층과 애호하는 층 두 개의 층으로 봐야 한다. 애호하는 층이 구매하는 층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시간문제다. 미술품의 가격, 즉 가치에 대한 판단은 투자에 대한 재무적인 생각이다. 엄밀히 말해 미술품을 투자 목적으로 구입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값비싼 골동품이나 톱5 작가의 그림을 매입하는 것은 투자 목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에 따라 작품을 직접 사는 것이 주종을 이룬다.

미술품을 하나 마련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요인이 무엇인지 짚어보자. 당연히 동기부여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미술시장의 체질개선을 위한 눈에 안 보이는 대승적 두 가지 포인트가 나타난다. 하나는 미술계의 혁신적인 마케팅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의 미술품 매입을 업무용 자산으로 인정해 주는 시스템이다.

좋은 기획전시는 잠재돼 있던 애호가들의 마음과 지갑을 열게 한다. 관행처럼 진행되는 아트페어(미술견본시장)를 비롯해 매년 특징 없는 유사한 내용이 반복되는 기획전을 보노라면 "달라진 것이 뭐 있겠어"하는 생각에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그 화가에 그 작품, 그 나물에 그 밥이라 할 수 있다. 입맛 떨어지듯 눈맛이 떨어지는 것이다. 많은 애호가는 미술계 행사를 몸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수한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주어지고 애호가의 발길을 끌 수 있는 마케팅 기획만이 미술시장의 기초를 만들어 준다.

원래 미술관의 시발점은 기업이다. 기업은 거금을 내놓고 컬렉션을 공개적으로 매입한다. 컬렉션이 자라난 뒤 떳떳하게 공공성을 띤 독립기관으로 출가한다. 그러고는 해당 지역의 시민은 그 미술관을 시민 공유의식 속에 사랑하고 받아들인다. 기업이 세운 미술관은 휼륭한 전시기획으로 미술관의 공공성 역할을 해왔다.

솔직히 얘기해 재벌 소유 미술관이 미술품을 사들이는 게 우리 미술시장의 가장 큰 매출처인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기업의 작품 매입이 미술시장을 이끄는 가장 큰 견인차이기에 미술품을 업무용 자산으로 인정해 주고 구매 비용을 손비로 처리해 주는 것이 국내 미술시장을 살리는 한 방법이다. 법인과 개인 모두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할 때 세제혜택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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