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노래책 낸 '장애인 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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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광덕리 시골교회에서 장애인 30여 명과 함께 살고 있는 임락경 목사(60).

그는 1960년대에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이 만든 결핵환자 공동체 시설 동광원에서 일했고, 70년대엔 농민운동에 몸 담았다.

1979년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에 연루된 뒤 80년 화천에 정착, 환경농업을 해 온 그가 이번엔 노래책을 냈다.

'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이란 제목의 이 책(332쪽)에는 '달 따러 가자' 등 동요, '이 대통령 찬가' 등 역사적 노래, '제2 훈련소가' 등 군가, '단장의 미아리 고개' 등 군가에 준하는 노래와 성가 등 72곡이 실려 있다.

노래가 불렸을 당시의 시대적 상황,임 목사 자신과의 관계 등 노래에 얽힌 사연이 소개된 것은 물론 일부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는 곡(曲)도 실려 있다.

예컨대 '참전용사를 보내는 노래'는 한국전쟁 때 전장에 나가는 용사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불렀으나 국방부 도서관에도 자료가 없다고 한다.

또 '이기붕 선생' 노래는 1959년 한창 보급되다 60년 4.19혁명이 나면서 1년 만에 자취를 감췄다. 4.19 직후 제목도 없이 구전되다 5.16 이후 없어진 '권불십년(權不十年)', 일반인은 잘 알지 못하는 '굳세어라 금순아' 의 3절 가사도 담겨 있다.

책에 수록된 노래는 모두 임 목사가 기억하고 부르는 것들이다.

이 책을 발간하기 위해 그는 지난 3월 무려 5시간 동안 노래를 부른 뒤 녹음, 가사를 찾아내고 악보가 없는 노래는 전문가에 의뢰해 곡을 복원했다.

이 때 부른 노래는 2장의 CD로도 제작됐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일부 가사는 여동생 등의 도움을 받거나 자료를 찾아 보완했다.

노래는 임 목사 스스로 "난 그것밖에 잘 하는 게 없다"고 밝힐 정도로 자신있는 분야다.

"전북 순창의 이름난 노래꾼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하는 그는 "악보나 가사집 없이 수백 곡을 부를 수 있으며 한 때 승용차로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 동안 한 곡도 겹치지 않게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고 자랑했다.

임 목사의 노래책에 대해 상지대 김성훈 총장은 "눈과 손을 뗄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또 이화여대 신인령 총장은 "공동체 식구를 보살피고 나누는 일에 열심인 임 목사 삶의 진면목을 행간을 통해 읽을 수 있다" 고 추천사에서 밝혔다.

한편 시골교회에서는 19~21일 시골집 창립 25주년 및 책 출판을 기념하는 잔치가 열린다.

특히 20일에는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시인 박노해 씨.김성훈 총장. 감신대 이정배 교수 등이 교회를 방문한다.

21일에는 일본 후쿠요시교회 이누카이 미츠히로(犬養光博) 목사 등 일본 교계 인사 25명과 도시 선교회 산증인인 조화순 목사.풀무원 설립자 원경선 씨 등이 참가해 '가거라 삼팔선아'란 제목으로 한.일 평화 교류를 기원하는 예배를 한다.

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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