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세상 마치는 날이 고민 끝나는 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박근혜 대통령이 2일 통일준비위원회 제3차 회의 시작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회의가 끝난 뒤 참석자들과 오찬을 함께했다. 박 대통령은 오찬에 앞선 인사말에서 “항상 어려움도 있고, 고민도 하고 그래서 ‘세상 마치는 날이 고민이 끝나는 날’이라고 말할 정도로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이 청와대 내부까지 흔들어 놓고 있다. 정씨가 자신을 음해한 주체로 “청와대 민정”을 지목한 데 이어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정윤회 문건의 60% 이상은 사실”이라고 주장하면서 화살이 권력 내부로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2일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3차 회의를 마친 뒤 참석자들과 오찬을 하면서 묘한 말을 했다. 박 대통령은 “성경에도 그런 얘기를 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사람들이 고난이 많다”며 “항상 어려움도 있고 고민도 하고, 그래서 ‘세상 마치는 날이 고민이 끝나는 날’이라고 말할 정도로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모든 사람들의 인생살이에서 먹는 즐거움을 빼면 아마 살아가는 즐거움의 80%는 달아나는 것 아닐까”라며 “이렇게 토론하고 힘들게 일하다가도 식사시간이 되면 마음이 푸근해지면서 ‘마음 좀 편하게 갖자’, 이렇게 되는데 요즘은 또 업무만찬·업무오찬 그래서 식사시간까지도 편안하게 식사만 하면 안 된다는 풍조가 있다”고 토로했다. 참석자들은 이 발언을 전하며 “‘정윤회 문건’ 유출 논란과 조 전 비서관의 폭로 등으로 어지러운 대통령의 심경이 녹아 있는 발언 같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정씨와 조 전 비서관의 잇따른 발언에 오전 내내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며 신중했던 청와대는 오후 들어 적극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조 전 비서관의 주장에 대해 “조 전 비서관은 바깥에서 언론을 통해 일방적인 주장을 펼 것이 아니라 검찰에서 진실을 밝히는 데 협조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또 일부 언론이 ‘문건 논란을 보도한 언론사를 고소한 청와대 관계자들이 검찰에 출두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한 데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민 대변인은 “고소인들의 출두 문제는 검찰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이고 고소인들은 그런 검찰의 결정을 따를 것”이라며 “고소 당사자들은 통화내역 기록 제출을 포함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논란의 한복판에서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새누리당 내에선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나서서 문건 유출과 조 전 비서관의 발언을 비판했다.

 검사 출신인 김용남(경기 수원병) 의원은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윤회 문건’은 조 전 비서관과 박모 경정 두 사람의 작품으로 보인다”며 “두 사람은 이익을 같이하거나 운명을 같이하는 입장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조 전 비서관의 인터뷰에 대해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청와대 공직기강 업무를 하던 사람이 청와대를 나온 뒤 인터뷰를 통해 청와대를 공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는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직무상 취득한 사실에 대해선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 청와대 근무를 시작한다”며 “대통령 집권 불과 2년차에 이런 일이 생긴 건 거의 엽기적”이라고 꼬집었다.

 특수부 검사를 지낸 박민식(부산 북-강서갑) 의원은 YTN과의 인터뷰에서 “심각한 문제다. 청와대 문건이 밖으로 나와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고 국가적 에너지를 소모시켰다”며 “언뜻 보면 당시 비서관 팀과 공직기강 쪽이 심각한 트러블(문제)이 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정씨가 당당히 기자회견을 하고 검찰 조사도 받아 억울함이 풀린 뒤 박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외국으로) 떠나면 국민에게 박수를 받을 것”이라고도 했다.

 반면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는 공식 회의에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사건의 쟁점화를 피하기 위해서다. 전날(1일) 박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대해 언급을 한 만큼 당까지 나서서 말을 보탤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K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한 점 의혹도 남김 없이 수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원론적으로 말했다. 야당의 특검 요구에 대해선 “검찰 수사가 먼저”라고 일축했다.

글=이가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