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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회·호금회·연금회 … 관피아 떠난 자리 놓고 각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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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일 우리은행 행장후보추천위원회(행추위)는 면접 대상 후보 세 명을 추렸다. 차기 수장 선출 작업이 본격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은행 주변은 ‘파장’분위기가 역력하다. ‘실질 인사권자’가 차기 행장을 내정했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퍼지면서다. 연임을 노리던 이순우 행장도 후보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였다. 이날 행추위의 결정에 은행에선 “차라리 단독 후보를 내고 끝내는 게 나았을 것”이란 자조마저 흘러나왔다.

 우리은행은 정부(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다. 최고경영자(CEO) 선출도 당연히 정부 의사가 절대적이다. 그러나 행추위 같은 기구를 이처럼 내놓고 들러리 세운 사례는 드물었다. 정부와 관계없는 은행들의 이익단체인 전국은행연합회장 선임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은행장들이 후보 추천을 위해 모인 건 지난달 24일. 하지만 일주일전부터 내정설이 흘러나왔다. 한 전직 관료는 “예전에도 ‘눈 가리고 아웅’이었던 건 마찬가지였고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며 “요즘은 아예 ‘눈도 안 가리고 아웅’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권 인사는 세월호 참사와 KB금융 내분사태를 계기로 흐름이 크게 변했다. 관피아(관료+마피아)의 퇴조와 민간 출신 중용이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은행연합회 수장은 모두 민간 출신이 차지했다. 대우증권 사장도 현직 부사장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관피아가 배제되자 새로운 논란이 불거졌다. 오히려 절차나 투명성에선 오히려 퇴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관피아, 정피아의 오랜 득세에 민간이 재목을 키우지 못한 상태에서 민간 지원자들이 정치적 연줄과 인맥, 학맥을 동원하다 보니 잡음이 커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최근엔 후보자의 출신 대학이 주목 받고 있다. 대우증권 사장에 ‘서강금융인회’(서금회) 멤버인 홍성국 사장이 낙점되고, 연이어 우리은행장 후보로 역시 서금회 소속인 이광구 부행장이 떠오르면서다. 금융권에 대학 동문 모임 결성이 본격화된 건 17대 대선 전후인 2007~2008년이다. 서금회는 박 대통령이 2007년 당내 대선 경선에서 낙마한 직후 결성됐다. 박지우 KB국민은행 부행장 등 서강대 75학번 금융인 10여명이 창립 멤버다. 매년 두 차례 정기 친목 모임을 갖는 서금회는 18대 대선 전후 회원이 300여명으로 늘었다.

 2008년 이명박(MB) 정부가 들어서자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 서진원 신한은행장 등 고대 출신이 금융권 전면에 기용됐다. ‘고금회’로도 알려진 ‘호금회(고대 상징물인 호랑이와 금융인의 합성어)’가 등장한 배경이다. 호금회 멤버 대부분은 MB 지지모임으로 이름난 ‘고대경제인회’에도 소속돼있다. 어 전 회장과 이 전 회장, 서 행장은 각각 고대경제인회 고문과 부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호금회가 세를 넓혀가자 맞수인 연세대 출신 금융인들이 2008년 7월 ‘연세금융인회(연금회)’를 출범시켰다. 2005년 결성됐던 ‘연경 금융리더스포럼’을 다시 발족한 것이다. 초대 회장은 박종원 전 코리안리 사장이다. 최근 1~2년간 금융권에서는 연세대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권선주 기업은행장도 연금회에 얼굴을 내비친다. 김한조 외환은행장, 임종룡 NH농협금융 회장도 연세대를 나왔다. 한 금융권 전직 고위 임원은 “이번 정권 들어 연대 출신이 가장 힘이 세 ‘지난 5년 설움을 모두 털어냈다’는 평을 듣는다”고 했다. 서금회는 올들어 정부 입김이 먹히는 금융회사들을 중심으로 약진하며 세를 키우고 있다.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정연대 코스콤 사장에 이어 대우증권 홍 사장이 선임되면서다. 서강대 출신인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정권 초 기용됐지만 그는 서금회에 참여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금융계에 서금회가 약진하는 사이 금융당국은 인사로 뒤숭숭한 분위기다. 금융위원회는 2일 금융감독원 최종구, 조영제, 박영준 부원장 세 명의 사표를 한꺼번에 수리했다. 신임 진웅섭 원장의 취임에 따라 임원들의 일괄사표를 받는 과정에서 일부 임원들은 정치적 배경을 고리로 엎치락뒤치락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정부가 밀실, 파행인사를 반복하면서 금융회사에 대해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한 승계프로그램 마련을 요구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조민근·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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