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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대표단 17일 귀환] 3박4일 방문 뒷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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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8.15 민족 대축전의 김기남 북측 대표단장(왼쪽에서 둘째)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17일 경북 경주시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국보 24호)을 방문,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김 단장은 본존불 앞에서 삼배합장을 하기도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17일 평양으로 돌아간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비롯한 북한 대표단 182명은 많은 뒷얘기를 남겼다. 14일부터 8.15 민족 대축전에 참가한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남한에서의 삶을 체험했다. 남측 상황실에 속속 올라온 이들의 풍성한 말과 행동을 통해 북녘 사람들의 남한 체류 3박4일을 짚어본다.

◆ "남쪽이 좋긴 좋구만"=북측 참가자들은 서울 월드컵경기장보다 경기도 고양의 종합경기장에서 더 놀랐다. 폐막식과 여자축구 경기가 열린 고양 경기장에서 북측 인사는 "이것도 축전 개막식을 했던 월드컵운동장 같은 국가급이냐"고 물었다. 남측 안내원이 "이건 고양시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것이다. 다른 시에도 하나씩 있다"고 하자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한 북측 관계자는 혼잣말에 가깝게 "남쪽이 좋긴 좋구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북측 민간 참석자들은 대부분 이번이 첫 남한 방문이었다. 그렇지만 올림픽도로를 달리며 남측 안내원에게 "서울에는 한강에 모두 25개의 다리가 있는 걸로 들었다"고 말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남측 행사 관계자는 "북측 참가자들은 평양에서 일 주일 정도 남한 방문에 따른 사전 사상교양을 받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 퓨전 레스토랑에 간 북한 기자들=14일 이해찬 총리 주최 만찬을 취재한 북한 기자 4명은 삼청동 총리공관 인근의 퓨전 레스토랑에 들렀다. 남측 당국자의 제안에 선뜻 응한 것. 큰 통에 담겨 나온 맥주를 각자의 잔에 따라 먹던 이들은 "이게 피처 맥주"라는 남측 설명에 "평양에는 아직 없는 풍조"라며 신기해했다. 과거 신라호텔에 묵을 때 바로 앞 장충동 족발집을 가는 것도 꺼려했던 것과는 확 달라졌다.

전례 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북한 대표단의 술 소비도 최고를 기록했다. 저녁 때는 매일 객실에 국산 캔맥주 수백 개가 카트에 실려 배달됐고, 양주는 무제한 공급됐다. 남한 방문 경험이 많은 일부 인사는 호텔 바에서 새벽까지 남측 관계자와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목격됐다.

◆ "이게 잠자는 호텔 맞습네까?"=북한 대표단을 당혹하게 한 건 숙소인 W호텔의 첨단시설과 초현대식 인테리어. 광장동 워커힐호텔 바로 옆에 지난해 8월 문을 연 W호텔은 국내 최초의 6성(星)급. 북측은 한강과 강남 쪽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한눈에 들어오는 9층부터 13층까지를 사용했다. 도착 때부터 이들을 맞은 건 마치 거실처럼 소파와 쿠션으로 꾸며진 로비 라운지. 프랑스 디자이너가 설계한 원색에 가까운 객실 내부와 욕실에서도 객실이 훤히 보이는 구조 때문에 남한에 수차례 온 베테랑급 대남 인사도 "이게 잠자는 호텔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며 부적응을 호소했다고 한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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