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총 통화량 30%억제 의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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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추석대목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많은 돈이 풀렸다. 고삐 풀린 말이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재수정한 연말30%총 통화억제선도 지켜질지 의문이다.
연초 25%선에서 출발한 총통화 증가율은 사채파동을 기폭제로 30%선을 간단히 뚫었고 9월중에는 33·5%까지 뛰어올랐다.
정부당국의 설명처럼 아무리 사채파동에서 비롯된 과도기적인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돈이 한창 범람하던 78년(연평균 35%)이후 처음 벌어지는 통화홍수다(79년에는 24·6%, 80년 26·9%, 81년 25·2%였다).
당국도 사태의 심각성을 시인하고 뒤늦게나마 통화 환수 책을 모색하고 있으나 시위를 떠나 화살처럼 한번 풀린 돈은 여간해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우리네 금융체질이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9월중에 통화(현금+요구불 예금)가 무려 68·7%나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통계상의 왜곡이 심한 때라 이 숫자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예컨데 비교시점인 작년 이맘때의 통화증가율이 비정상적으로 너무 낮았다던가, 금년 7월 이후부터 저축성 예금인 통지예금이 폐지됐다던가 등등 여러 가지 요인들도 당국의 변명대로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최근 들어 통화증발을 합리화 시켜주는 핑계는 되지 못한다.
통화당국의 계산대로 모두들 감안한다해도 9월중 통화증가율은 40%수준을 웃돌기 때문이다.
더구나 금년 추석이 작년(9월10일)과는 달리 10월초였기 때문에 9월 통화가 이례적으로 많이 풀렸다는 변명도 설득력이 약하다. 금년 통화증가율을 앞서 지적한 요인들을 감안한 40%수준으로 낮춰 잡는다 하더라도 지난해 추석직전 한달 동안의 통화증가율27·2%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단순히 돈이 많이 풀리고 있다는 차원을 넘어서 또 하나의 걱정거리를 제시하고 있다. 같은 양의 돈이 풀려도 그것이 시중자금으로 나도는 형태가 안정된 저축성예금으로보다 들쭉 날쭉이 심하고 불안하게 마련인 요구불 예금이나 현금 쪽으로 뭉치 돈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늘어난 돈의 액수로 따져볼 경우 작년9월은 4천8백억원 가량의 총통화가 늘어난 가운데 저축성예금의 증가 액은 오히려 그보다 많은 5천억원이었던데 반해 금년 경우는 무려 1조 5천억원의 총통화가 늘어났으나 저축성예금증가 액은 2천4백억원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총통화에 대한 저축성예금의 비중은 금년 초 75%수준에서 73%로까지 떨어졌다.
반대로 이 기간중 현금과 요구불 예금을 합친 통화는 작년에 1백47억원에 불과하던 것이 이번에는 무려 8천3백억원이나 늘어났다.
이 같은 현상들을 요약해보면 많은 돈이 풀렸고 그 돈들의 향방은 매우 단기적·대기적인 쪽으로 몰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총 유동성(M8)기준으로 따져도 많은 돈이 풀렸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8월 한때 총 유동성은 오히려 감소현상을 보였으나 9월 들어 다시 크게 늘어나39·4%를 기록했다.
결국 최근의 통화증발은 어느 지표로 따져보나 과도한 수준임을 말해주고 있다.
더 난처한 문제는 이처럼 많은 돈이 풀렸는데도 기업들의 자금타령은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특히 대기업들의 대규모 규제금융요청이 끊이질 않고 구제금융이 계속되는 한 통화 증발 현상은 불가피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연말자금수요가 기다리고 있는 데다 정부의 쓰임새마저 잔뜩 연말에 몰려있고 보면 풀린 돈을 환수하기에 앞서 어떻게 덜 푸느냐에 급급한 형편이다.
결국 이철럼 풀린 돈은 장차 물가에 대한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것은 뻔한 일이다.
특히 연말에 가서 총통화증가율을 30%로 억제하는데 성공한다하더라도 6개월 동안이나 장기적으로 30%이상의 통화를 늘려왔다는 것이 아무래도 꺼림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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