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온정에 또한번 울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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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부모의 도리를 다하지못한 주제에 많은 분들께 폐까지 끼치게되어 몸둘바를 모르겠읍니다.』
여중생인 딸의 수업료 4만5천60원을 못대주어 끝내 즉음의 길을 택한 가난한 부정(부정)음용환씨(40·충남홍성군광천읍신진리445). 부인 진봉순씨(38)와 2남2녀등 다섯명의 유족들은 가장을 잃고 슬픔에찬 싸늘한 냉방에 몰려드는 훈훈한 인정에 가슴벅차 울먹였다.
음씨가 벼랑끝같은 좌절감에 빠진것은 지난달19일 장녀 정애양(15·광천녀중2년)이 학교로부터 퇴학원서를 받아들고와 도장을 찍어달라고 했을때였다.
『문설주를 붙들고 쓰러진 아빠는 입에 하얀 농약가루가 묻은채 숨을 몰아쉬었어요. 그리고 제손을 꼭잡고 이 못난 아빠를 용서해달라며 경련을 일으켰읍니다.』
정애양은 아빠의 음독이 퇴학원서때문이란 생각에 왈칵 무서움이 덮쳐왔었다고 햇다.
정애양의 한기분(3개월치)수업료는 4만5천60원.
이미 금년도 2,3기분이 밀려있는터에 4기분 통지서가 나왔다.
학교에서는 한기분치만이라도 내라고 독촉이 심했고 음씨는 장녀가 퇴학원서를 들고온 다음날 학교로 달려가 『1주일후에 꼭 내겠다』며 애원했다.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처지의 그에게 4만5천60원은 엄청난 돈이었다. 주변의 아는이들을 찾아 빚을 얻으려 했지만 모두가 냉담했고 다니던 블록 벽돌공장에서 급전융통을 해보려 했지만 이미 가불을 한 처지로 더이상 돈을 빌수 없었다.
결국 학교와의 약속을 지킬수 없게된 음씨는 지난4일 농약을 마시고 자살의 길을 택한 것이다.
음씨네 한달수입은 9∼10만원. 부부가 아침 7시부터 해질때까지 볼록 벽돌공장의 하청을 받아 벽돌을 찍어냈다.
하루에 시멘트 7부대를 손으로 개서 2백80장을 찍어냈다. 일당은 7천7백원. 비가 오거나 몸이 아파 작업을 못하는날을 빼면 한달에 보름정도의 벌이다.
음씨는 비오는 날이면 연탄공장에 나가 연탄을 찍거나 배달을 했다. 지난해 정월엔 눈을 다친데다 연탄기계에 손을 찧어 40일간 병원신세를 져야했고 설상가상으로 금년 여름엔 한달간 비가 내려 벌이를 제대로 못한 형편이었다.
2남2녀중 수업료가 드는 아이들은 장녀 정애양과 장남 창근군(13·광흥중1년)으로 지금껏 두자녀의 학비조달과 생활비등 2백여만원의 빚까지 지고있는 실정이었다.
음씨가 죽은뒤 온정은 전국 각지에서 답지했다.
이화여대 재학당시 남몰래 어려운 학생들을 도왔던 이흥수교수(동덕여대)가 맨처음 50만원을 본사에 맡겨왔고 「주부생활」대표이사 김영당씨가 50만원, 한국야구르트유업의 「사랑의 손길펴기회」가 30만원, 산다실업대표 진형욱씨가 5만원등 모두1백35만원을 보내왔다.
또 유흥수충남도지사와 홍성군수·광천여중등에서 30만원이 들어왔다.
정애양의 학교에서는 졸업때까지 학비면제로 공부할수 있도록 도교위에 건의를 했다.
『아빠의 뜻을 따라 열심히 공부하겠읍니다.』
정애양의 학교성적은 60명중 27등. 특별활동으로 과학반에 들어가 생물에 취미를 갖고있으며 꼭 의사가 될것을 다짐했다. 담임 조성한교사는 『성격이 차분하고 말이 없는 편으로 노력형』이라며 힘껏 보살피겠다고 말했다.
지난7일 주민들의 도움으로 장례를 치른뒤 정애양은 슬픔을 딛고 전과다름없이 학교에 나가고있다. <광천=고정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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