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민 기자의 타임 & 워치] 초정밀 기계에 담은 여성의 자유로움, 보헴 시리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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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급 손목 시계에 대한 고정 관념이 있다. 남성들만 애용한다는 것이다. 수백·수천만원 정도는 흔하고 몇억원짜리도 나온다. 슈퍼카에 빠져드는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기계적 우수성, 남성적 미감을 탐닉하는 수집가들도 있다. 이런 손목 시계가 대중화하기 전엔 회중 시계가 일반적이었다. 신사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회중 시계도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회중 시계가 보편화된 18세기 유럽 상류사회에서 여성들은 시계를 볼 수 없었다. 회중 시계를 갖고 다니며 여성이 직접 시간을 확인하는 건 무례한 일로 받아들여지던 때다. 한데 기록에는 16세기 영국 여왕이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손목 시계를 찬 것으로 돼 있다. 최상류 남성 소비자가 손목 시계에 관심을 갖는 요즘과는 또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목 시계가 대중에 널리 알려진 건 남성을 통해서다. 19세기 말 영국군이 전쟁용으로 사용하면서다. 회중 시계가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를 휴대성이 좋은 손목 시계가 차지했다. 20세기 후반, 현대의 손목 시계도 여전히 남성들의 사랑 덕에 성장했다. 명품 패션 쪽이 세계 경제 위기를 겪으며 흔들릴 때도, 고급 시계 시장만큼은 성장세가 꺾인 적이 없을 정도다. 이 분야에 최근 다른 흐름이 보인다. 여성들이 고급 시계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전까지 여성들이 좋아하는 시계는 귀금속 팔찌와 비슷한 액세서리에 머물렀을 뿐이다. 남성들이 ‘크로노그래프’ ‘퍼페추얼 캘린더’ ‘문페이즈’ ‘투르비옹’ 등 초정밀 기계의 화려한 기술에 무한한 애정을 보인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최고급 시계 시장이 쑥쑥 클 때도 여성용은 그저 남성 버전의 크기를 줄이거나, 다이아몬드와 루비·사파이어 등으로 요란하게 장식하는 선에 그쳤었다. 그런데 요즘 여성 시계는 고급 기술의 전통을 존중하며 이를 탐미하는 여성을 겨냥하고 있다.

‘몽블랑 보헴 컬렉션’이 그런 예다. 방랑자, 모험가, ‘자유로운 영혼’ 등으로 불리는 ‘보헤미안’이 컨셉트다. 남성들이 즐겨 쓰는 필기구와 가죽 제품으로 유명한 몽블랑이 감각적인 여성을 위해 마련한 게 ‘보헴 컬렉션’이다. 이 컬렉션에서 추구하는 시계는 정교하고 복잡한 시계 제조의 전통을 담고 있다. 장신구에 그치는 여성 손목 시계가 아니라 기술적인 우수성을 과시하는 동시에 여성적 우아미를 품은 고급 시계다. ‘몽블랑 보헴 데이트 오토매틱’ 모델은 시침·분침·초침이 시간당 2만8800회 반 진동하는 무브먼트인 ‘칼리버 MB 24.14’에 의해 움직인다. 구동 에너지 축적 시간 ‘파워 리저브’는 38시간이다. 수심 30m 방수 기능도 갖췄다. 팔찌 역할을 하는 시계줄 장식에만 큰 공을 들이고 무브먼트 등 기계 부분에는 덜 신경 썼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접근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여성을 유혹하는 세련미는 다이아몬드 62개로 장식한 베젤(시계 테두리)에 표현했다. 시계 판은 주름 치마를 닮아 여성적 우아미를 풍긴다. 시계줄은 100% 스테인리스 스틸 팔찌 형태 또는 레드 골드와 조합한 스타일이 있다. 시계 양쪽의 가죽 시계줄을 오렌지색과 노랑(사진), 연 파랑과 진 파랑 조합으로 다르게 할 수도 있다. 고급 시계 분야에선 이례적인 시도다.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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