벅월터 오티스-LG 부사장"나는 49% 한국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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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오티스-LG는 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무빙워크.보딩브리지(비행기 탈 때 여객청사와 비행기를 연결시켜 주는 장치) 등을 만드는 회사다. 엘리베이터업계 세계 1위 업체인 미국 오티스(OTIS)사와 LG의 합작사다.

이 회사의 브래들리 K 벅월터(41) 부사장은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한다. 골프장에서 캐디와 한국어로 농담할 정도며 사투리가 심한 한국 직원의 말을 표준말로 고쳐주기도 한다. 물론 한국말로 업무를 지시하고 e-메일도 한국어로 한다. 한국에 머문 지 11년이 넘은 그는 평소에도 "나는 51% 미국인이지만 49%는 한국인"라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다.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때는 1983년. 당시 대학생이자 독실한 모르몬 교도였던 그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우고자 한국에서 선교사 활동을 시작했다. "미국인을 만나려면 2시간 반 동안 버스를 타고나가야 할 만큼 오지에서 선교활동을 했어요. 주민들과 통하려면 한국어를 배우는 수밖에 없었지요."

교재라고는 사전과 문법책이 전부였다. 앞주머니에 단어장을 항상 꽂아놓고 주민과 얘기하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일단 적었다. 그리고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며 자습했다. 18개월 동안 선교활동을 한 뒤 미국에 돌아간 그는 대학과 MBA(경영학석사)과정을 마친 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오티스에 입사했다. 싱가포르와 도쿄(東京)를 거쳐 94년 7월 한국지사에 발령받았다.

그는 한국에 오자 선교사 시절 느꼈던 푸근한 '한국의 정'에 다시 푹 빠져 매년 연장근무를 신청했다. 이젠 미국 본사로 출장갔을 때도 하루에 밥 한 그릇을 먹지 않으면 속이 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낙지볶음.매운탕.김치찌개 등을 특히 좋아하는데 식당에 가면 "맵게 해 주세요"라고 부탁하곤 한다.

오티스와 LG가 합작하기 직전 벅월터 부사장은 오티스-코리아의 한국지사장(직원 300명 규모)을 맡았다. 합작 법인이 설립되면 사장에서 부사장으로 '강등'됐지만 함께 일하는 직원 수는 훨씬 많다. 그가 맡고 있는 서비스 사업부문엔 협력사를 포함해 직원이 2500여명이나 된다. 서비스 사업 부문에선 엘리베이터를 산 고객이 매달 일정액을 내면 각종 부품 수리와 유지 보수 관리를 알아서 해주는 '자동차 종합보험' 같은 토털서비스를 해준다. 365일 24시간 원격에서 엘리베이터를 관리하면서 고장이 나기 전 부품의 수명을 체크해 미리 바꿔주고 보수해준다.

5년 전부터 이 분야를 맡아 내년 20%씩 매출을 키워가고 있다. 그는 "건설경기 불황으로 신규 엘리베이터 시장이 매년 20~30%씩 줄어들지만 서비스 부문의 매출은 오히려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를 안전하게 오래 쓰려는 고객들의 관심이 느는 덕이라고 했다. "회사가 허락하는 한 한국에 오래있고 싶다"는 그는 "한국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이 말은 꼭하고 싶다"며 충고했다.

"한국인들은 위기의식이 있어야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 중국으로 공장이 빠져나가고 있는 지금의 한국 상황은 위기 그 이상입니다."

글=최지영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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