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의 정권교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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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불황의 중압으로 정권교체가 빈번한 유럽에서 서독의 사민당정권이 붕괴하여 서독의 전후 정치사는 한 시대의 막을 내렸다.
69년 집권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던「헬무트·슈미트」수상의 사민당은 9월 현재의 실업자 1백80만(집권당시는 18만), 이 나라 두 번째의 전기메이커 AEG탤래푼켄 사의 도산 소동으로 나타난 경기침체를 해결하지 못하여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어왔다.
연립내각의 제2당인 자민당이 국민들의 지지를 잃고있는 사민당과의 제휴를 이탈하여 기민당의 우파노선을 지지한 것이 사민당정권에 최후의 일격을 가한 꼴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서독의 정권교체는 자민당의 당리당략에서 빚어진 것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자민당의 연정이탈의 저변에는 변화를 바라는 서독유권자들의 무드, 그리고 국민들의 의식의 변화를 대변하려는 사민당 내 일부 젊은 당원들의「반란」이 착실하게 깔려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가 없다.
가령 일과 레저에서 어느 쪽이 더 즐거우냐는 질문에 대한 서독사람들의 대답이 20년 전에는 레저 쪽이33%였으나 지금은 47%로 나타났다. 검소하고 근면한 국민으로 통하던 독일인 상이 크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무드를 타고 등장하여 지지기반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 사민당에서 이탈한 젊은층이 결성한「녹색의 당」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 나라의 전후경제부흥에 참여했던 중년층이상의 국민들이 유럽 최고를 자랑하던 서독의 번영이 한계에 이른 사실에 눈을 뜨고 자신을 잃고 동요를 보이기 시작했다.
사민당 내각이 지난 7월에 확정한 83년도 예산안을 높은 실업률에 따라 다시 조정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 국민들의 자신감 상실을 더욱 부채질한 것이다.
사민당은 고용촉진으로 실업률을 줄이기 위한 재원조달책으로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를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고소득의 화이트칼라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자민당이 반 사민당 조반을 일으킨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13년 만에 집권하는 기민당의「헬무트·콜」수상의 내각은 사민당의 상표라고도 할 수 있는 사회복지부문을 대폭 삭감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것은 서독정치의 우선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독은 근대사회민주주의의 발상지다. 사민당은 서독의 정당이라고 할 만큼 사회민주주의가 포방 하는 사회복지에 서독국민들은 길들여져 있다. 여기에 기민당정권에 의한 탈 복지정책의 한계가 있고 따라서 내년3월로 예상되는 총선거의 결과를 보기 전에는 기민당 정권의 수명을 점치기 어렵다.
사민당은 동방정책에 따른 동서데탕트의 정당이다.
국제정치무대에서「헬무트·슈미트」수상은 동서간의「다리」역할을 맡고있었다. 서구 몇 나라들의 대소 가스송유관 수출문제로「슈미트」정권도 미국과 대립해 왔지만 그래도 미국과 소련의 중간에서 두 강대국이 대화의 채널을 유지하여 냉전복귀를 방지하는데「슈미트」수상이 맡은 역할은 높이 평가 받아왔다.
「슈미트」수상의 실각에 누구보다도 크렘린이 불안한 시선을 던지는 이유도 이해할만한 일이다.
유럽 전체를 놓고 볼 때 스웨덴, 네덜란드에서는 최근의 총선거에서 사민당이 승리했다. 스페인서도 중도좌파정권의 탄생이 시간문제다. 그리스와 프랑스에는 이미 사회당이 집권했다.
반면에 영국서는 보수당이 집권하고 미국서는「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따라서 서독 사민당정권의 붕괴를 어떤 범 유럽적인 우선회의 일환이라고 단순화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서독의 유권자들은 경제불황에서 오는 생활의 불편에 대한 불만을 투표소에서 털어 놓았을 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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