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 특파원 르포] 가자지구 철수 D-2 … 갈라진 이스라엘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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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가자지구 남부의 구시 카티프 마을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정착촌 철수 정책에 반대하는 유대인 정착민이 아기를 안고 ‘인간사슬’ 시위를 하고 있다. 오렌지색 리본은 정착촌 철거에 대한 반대를 상징한다. 유대인 정착촌 철거 작업은 15일 가자 지구를 시작으로 요르단강 서안으로 이어진다. [가자지구 AP=연합뉴스]

"샤론(현 총리)은 더 이상 우리의 지도자가 아니다."

"켄(Yes)!"

11일 저녁 이스라엘 행정수도 텔아비브의 라빈 광장.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격앙된 선동과 군중의 우렁찬 화답으로 광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거리는 온통 오렌지색. 15일 시작되는 가자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 철거에 반대하는 이스라엘인들의 시위 현장이다. 모자에서 티셔츠.머리띠까지 모두 철거에 반대하는 상징인 오렌지색이다.

라빈 광장은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정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총리가 1995년 우익 청년에게 암살당한 장소다. '팔레스타인과의 평화가 곧 이스라엘 민족의 생존권 박탈'이라고 주장하는 이스라엘 우파에겐 상징적인 곳이다. 10년이 지나 다시 평화에 반대하는 보수우익 세력이 운집했다. 주최 측은 10만 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오렌지색 플래카드엔 우파 주민들의 격앙된 감정이 담겨 있다. '정착촌 강제 철수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인종청소' '유대인 떠난 자리엔 테러가 자란다'. 철수를 지지한 미국을 겨냥해 '부시는 손을 떼라'는 구호도 눈에 띄었다. 시위를 주도한 유대인 민족위원회의 루시 리버만(38.여) 대변인은 "가자지구 철수는 이스라엘의 장래가 달린 문제"라고 목청을 높였다. 정착촌에서 유대인이 철수하면 가자지구 전체가 하마스 등 과격단체 손에 넘어가 테러가 예루살렘을 향해 북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정치수도 예루살렘에선 파란색이 눈에 띄었다. 가자지구 출입허가를 받고자 찾아간 공보부 미디어국에서 자원봉사단체인 '말키 재단'의 아놀드 로스(53)회장을 만났다. 말키는 로스의 딸이다. 2001년 15세 소녀 말키는 팔레스타인인의 자폭 테러에 희생됐다. 딸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려고 로스는 자선단체를 만들어 테러 희생자와 가족을 돕고 있다. 그는 차에 늘 파란색 리본을 달고 다닌다. 철수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평화의 상징이다. 로스는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을 다 쫓아낼 수 없는 상황에서 공존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지금 오렌지색과 파란색으로 갈라져 있다. 여론조사에선 가자지구 철수를 지지하는 파란색이 더 많은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철수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면서 오렌지색이 급속히 늘고 있다.

?정착촌 철수=유대인 정착촌이 철거될 예정인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점령한 지역이다. 1차 철거 대상인 가자지구 내 21개 정착촌엔 약 8500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다. 2차 철거 대상인 서안지구 120개 정착촌에 살고 있는 유대인은 약 20만 명이다. 정착촌 철거는 건국 이래 점령과 팽창을 계속해 온 이스라엘의 '입식(入殖)'정책의 종식을 의미한다. 중동 평화의 전환점으로 간주되는 이유다. 그러나 보수우파 유대인들은 이를 생존권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가자와 서안지구 모두 자신들의 땅이며 생존과 안전의 터전이라는 것이 그들의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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