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채 인수로 시중은 자금난|통화증발요인 될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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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난기류속의 금융시장」-. 6·28 금리인하이후 전에 없던 저금리시대를 맞은 금융시장은 곳곳에서 이상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금리를 대폭 내려줬는데도 기업들의 돈타령은 여전하고 공금리와 실세를 반영하는 시장수익률과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적자살림을 꾸려나가는 정부는 엄청난 물량의 국공채를 발행해 은행에 떠맡기려 하는 반면 적자에 허덕이는 은행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모면할 궁리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기회를 노리는 단기성·대기성자금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예금이나 채권은 크게 줄어들었다.
증권회사들은 할수록 손해라는 이유로 회사채발행주선을 기피하는가 하면 안팔리는 신규발행 회사채는 장외로 뛰쳐나와 덤핑행상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는 한동안 잠잠하던 부동산 투기쪽으로까지 돈이 몰려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저금리 체제에서 우려됐던 문제들이 하나하나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재의 공금리 수준이 상식선 이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금융관계자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그러나 앞으로가 더 문제다. 재정적자에 따른 국공채발행이 흡수를 이루면서 이같은 저금리시대의 문제점들을 더욱 심화시키고있기 때문이다.
추경을 위한 국채 3천5백억원이 연말까지 발행되고 내년 들어서는 적자예산에 계상된 5천5백억원, 여기에 추곡수매에 따른 양곡증권발행을 5천6백억원 가량으로 줄잡으면 모두 l조4전6백억원의 국공채가 쏟아져 나오게 된다.
결국 이만큼의 돈을 정부가 민간쪽에서 빚을 내어 끌어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리가 요즈음처럼 낮을 때에 장기채인 이들 국공채가 잘 팔릴리가 없다. 안팔리니까 보세금리인 채권시장의 수익률은 자꾸 오르는 반면 발행금리는 묶어둔채 그냥 있으니 실세금리와 공금리의 격차는 계속 더 벌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안팔린다고 해서 계획했던 국공채발행을 포기하는 정부는 없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발행한 국공채를 은행에 강제 인수시키자는 것이다. 급한김에 정부가 필요한 돈을 우선 은행자금으로 조달하고 국공채소화는 은행이 알아서하라는 식이다. 조만간 발행될 재정증권 1천억원이 바로 그런 예다.
인수한 채권이 잘 안팔릴 경우 은행의 여신한도는 그만큼 줄어들게 되며 팔리더라도 그것이 은행예금을 빼내어 채권을 산다면 예금감소에 따라 대출재원이 줄어드는 것은 마찬가지인 셈이다. 가뜩이나 자금사정이 어려운 은행들은 이 때문에 여간 고민이 아니다.
결국 정부가 민간의 돈을 끌어가는 이른바 크라우딩 아웃(Crowding Out)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쓰임새가 늘어남에 따라 상대적으로 민간기업들이 쓸 자금여유는 그만큼 핍박해진다는 말이다.
물론 미국도 국공채발행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심한 크라우딩아웃 현상을 겪고있다. 그러나 우리의 그것과는 전혀 여건이 다르다. 미국의 경우 크라우딩아웃이 일어나면서 시중에 자금이 부족해져 금리가 올라갔고 금리가 올라가니까 자연히 민간기업들도 자금수요가 줄어들어 전체 통화 수급면에서는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금리가 움직이면서 완충역할을 하고 자원의 배분을 자동적으로 조정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반면 우리정부는 정부쪽에서 아무리 돈을 빨아 들여가도 은행금리는 여전히 싸니까 기업들의 대출수요가 줄어들리 만무하고 따라서 필요한 자금수요를 메워주자면 한국은행이 돈을 더 찍어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공채의 과다한 발행이 결국 통화증발을 초래하는 셈이고 국공채발행이 비인플레적인 재원조달방법이라는 원론적인 설명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물론 정부에서 끌어간 돈이 빨리 시중자금으로 환류될수 있다면 클라우딩아웃의 부작용은 훨씬 경감될 수 있다. 그러나 이점에 있어서도 여의치가 않다. 정부지출내용이 주로 토목사업이나 양곡수매 등에 치중되어있어 이 자금들이 다시 은행창구로 환류되는데는 최소한 3∼4개월 이상 걸린다는 것이 관계자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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