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이야기 마을] 사라진 배낭 세 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9면

꿈많고 웃음 많던 여고시절 단짝이던 우리 셋은 아이 키우느라 여념이 없는 지금까지 변함없는 우정을 키워오고 있다. 셋 모두 부산 토박이였지만 그 유명한 해운대 한 번 가보지 못한 순둥이(?)들이었다.

1학년 첫 여름방학을 맞아 우리는 과감하게 먼 곳까지 원정 피서를 가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른 아침부터 채비를 하고 버스에 올랐다. 오전엔 파도 타고 놀고 점심 땐 햄버거도 사먹을 계획에 마냥 신났다.

수영복도 없었을 뿐더러 늘씬한 여대생 언니들과 가파른 등굣길에 다져진 우리의 근육질 다리와는 처음부터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우리는 그냥 입고 간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놀기로 하고 커다란 검정 고무튜브 하나를 빌렸다.

그러나 수건이랑 지갑이 든 배낭 세 개는 유료 사물함에 맡겨야 했다. 그런데 평소 짠순이로 소문난 친구 한 명이 사물함을 쓰지 말고 그 돈으로 햄버거 먹을 때 팥빙수까지 사먹자고 제안했다. 나와 다른 친구는 지갑도 있고 하니 그냥 사물함을 빌리자고 서로 승강이를 벌였지만 결국 먹을 것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주위 눈치를 살피며 배낭 셋을 샤워장 앞 모래사장에 깊숙이 파묻고 나무 막대를 꽂아뒀다.

튜브 하나에 셋이 매달려 짠물을 연거푸 마시면서도 시원한 파도에 몸을 맡기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한참을 놀다 보니 허기가 졌고 우리는 배낭을 찾으러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표시로 꽂아둔 막대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저곳 한참을 파봤지만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배고픔도 사라지고 어떻게 집에 돌아갈지가 걱정이었다. 대한민국 씩씩한 아줌마가 된 지금 생각하면 파출소 등을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면 차비 정도는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땐 왜 그토록 융통성이 없었던지….

우리는 해운대구에서 사하구까지 아무 말 없이 무작정 걸었다. 누군가 말이라도 건네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밤 늦게 집에 도착한 우리는 다리가 퉁퉁 붓고 땀도 너무 흘려 거의 탈진 상태였다. 그때 일은 성적과 선생님에서 아기와 남편으로 주제가 바뀐 우리의 수다 속에 여전히 살아남아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박수임(30.주부.울산시 방어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