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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난민촌의 대학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이스라엘이 서 베이루트를 무력 점령한 결과가 팔레스타인 피난민의 대량학살로 나타났다. 전세계의 경악과 분노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스라엘의 「베긴」수상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레바논철수에 관한 관계당사자들의 합의에 따라 이스라엘군을 레바논에서 철수시켰어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령지역을 오히려 서 베이루트까지 확대하여 이번 참사가 일어날 조건을 만든 것이다.
사브라, 샤틸라 두 피난민 캠프에 대한 무차별 학살은 레바논의 우파민병대 팔랑헤의 소행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팔랑헤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취임전에 테러분자의 손에 죽은「게마옐」에 충성하는 세력이다.
따라서 우파민병대는 「게마옐」암살을 팔레스타인 피난민이나 피난민 캠프에 아직도 은신하고 있다고 그들이 생각하는 PLO전사들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거기에 대한 보복으로 남녀노소 안가리는 끔찍한 학살행위를 저지른 것 같다.
이 학살극에 이스라엘군인들이 직접 관련되었는지의 여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인이 거기에 참여했건 안했건간에 20세기 문명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의 대부분을 이스라엘은 면할 수 없게 되었다.
레바논의 치안유지를 위해서 군대를 철수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지원을 받고있는 우파민병대의 피난민촌 난입을 보고만 있었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일설에는 레바논 우파민병대가 PLO전사들의 색출을 위해 피난민촌에 들어갔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고자하는 일의 하청일 뿐이다.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철수를 주저하고, 이스라엘군의 서 베이루트 강점으로 무고한 피난민들이 대량 학살됨으로써 PLO철수에 관한 합의는 일단 깨어졌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이 합의를 토대로, 또 그것을 계기로 아랍-중동간의 평화공존과 항구적인 평화의 틀을 얽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거의 송두리째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그렇다고 이미 분산 철수한 PLO전사들을 레바논의 화약고로 복귀시킬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이스라엘이 세계도처에서 비난과 규탄을 받고 있는 것을 계기로 「베긴」수상의 영토확장주의와 과격한, 거의 광신적인 시오니즘에는 효과적인 재갈이 물려져야한다.
우리는 「레이건」미대통령이 피난민학살의 책임이 이스라엘에 있다고 말한데 전적으로 공감을 하면서도 「레이건」의 이스라엘규탄의 어조가 약한데 실망했다.
미국은 이제 이스라엘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한다. 중동의 난폭자를 끝까지 품에 안고 있으면 제2, 제3의 피난민학살사건이 일어날 때 미국에 그 책임을 묻는 소리가 높아질 것을 각오해야한다.
미국과 유엔, 그리고 중동에 영향력과 이해를 가지고 있는 모든 나라들은 이스라엘군의 레바논철수를 위해서 가능한 모든 압력과 수단을 동원할 것을 촉구한다.
어쩌면 이번 사건은 내년과 76년에 레바논을 생지옥같이 만들어버린 내전의 신호탄이 될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서든지 내전의 재발은 막아야한다. 그렇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레바논의 정치, 군사세력들간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 이스라엘과 팔랑헤가 누리는 압도적인 힘의 우위가 개선되어야 한다.
이번 사건을 놓고 이스라엘 안에서도 비관의 소리가 높다. 「베긴」수상, 「샤론」국방상에 대한 이스라엘 국내의 비판이 「베긴」내각의 존립까지도 재검토하는 사태로 발전하는 것이 이 사태수습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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