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힘의 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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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게릴라의 레바논 철수를 실현시킨 레바논 평화협정이 어쩌면 중동평화의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한 사람들은 지난 며칠사이 베이루트에서 일어난 사태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스라엘지지세력, 시리아, PLO가 혼전을 벌이는 레바논에는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는 중앙정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PLO 철수가 끝난 뒤 바로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바시르·게마옐」이 당선되었을 때 비록 그가 친이스라엘적인 우파지도자라는 약점은 있으나 레바논의 무정부상태 해소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게마옐」은 취임도 하기전에 테러에 희생되어 PLO없는 레바논의 장래가 반드시 순탄할 것 같지 않다는 불길한 조짐을 보였다.
때를 같이하여 이스라엘은 레바논평화협정정신을 유린하면서 서 베이루트에 군대를 진입시켜 정부청사, 방송국을 포함한 주요기관들을 장악해버렸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스라엘군대가 탱크를 앞세워 3일 동안이나 소련대사관을 점령한 일이다.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치안이 확보될 매까지 군대를 주둔시키겠다고 한다. 그건 강국이 약소국을 침략 점령할 때 내세우는 판에 박힌 명분이다.
지금 생각하면 지난6월의 이스라엘의 레바논침공은 제1단계작전에 불과했던 것 같다.
레바논을 사실상 이스라엘의 위성국으로 만들어 완충지대로 삼고 국력을 동부전선으로 쏟아 요르단강서안과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수립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 이스라엘의 속셈이다.
PLO의 레바논철수만 해도 미국이 관계당사국들에 대해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여 성사된 것이다. 그 뒤에 나온「레이건」의 중동평화안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아닌 자치만을 구상하여 아랍세계일부의 반대를 받기는 해도 협상의 출발점은 됨직하다는게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레이건」안에 대한 일종의 대안으로 나온 것이 20개국 아랍정상회의의 8개 평화안이다. 여기서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유엔신탁통치하에 수립하자고 제안하고 있어 이스라엘이 반대하지만 아랍수뇌들이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했다는 것은 큰 진전으로 평가할만한 것이다.
이와같이 아랍-이스라엘분쟁의 해결을 위한 외교적인 노력이 재개되어 활기를 띠고있는 때 이스라엘이 다시 군대를 움직여 베이루트를 완전장악하고 소련을 도발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중동평화를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밖에 가져올 것이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베긴」정권은 요르단강서안을 이스라엘 고유의 영토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대인 정착촌건설에 그토록 재정을 쏟아 넣는다.
이스라엘독립운동시절「베긴」은 특공대장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마을을 습격하여 촌민모두를 남녀노소 구별없이 살상한 전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저금「힘의 논리」만을 밀고 나간다. 이스라엘의 힘의 원천이 미국의 지원, 미국내 유대인로비, 그리고 역설적으로는 아랍세계의 분열이다. 이스라엘이 세계여론을 무시하고 팔레스타인 피난민들의 정당한 권리를 묵살하고 레바논의 주권을 유린하면서 계속 중동의 「난폭자」같은 행동을 계속한다면 미국과 유대인로비가 끝까지 이스라엘을 지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랍세계도 언제까지 분열만 일삼지는 않을는지도 모른다.
특히 「화약고」에서 소련을 도발하는 행위는 미-소 대결을 촉발할 수도 있는 불장난으로 세계여론의 지탄을 받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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