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관상학으로 보면 더 재미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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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하회탈을 깍고 다듬은지 어언 30년. 안동 하회마을에 하회탈 박물관을 세워 손님을 맞은지도 8년이 넘어간다.

안동에서 나고 자라 하회탈과 평생을 보내, 웃는 모습마저 탈을 닮아가는 하회탈 박물관 김동표(52)관장.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69호인 하회별신굿 탈놀이 보존회의 탈제작 담당이자 탈놀이 각시 역할 이수자이기도 하다.

김관장은 지난 달 20일 하회탈 박물관을 보수해 재개관했다. 연간 입장객 30여만명, 전시 품목 8백여점. 사설 박물관으로는 상당한 규모이니 새단장을 할 때도 된 것이다.

1995년 박물관을 연 김관장은 "탈은 볼수록 매력이 있다"며 "탈이 좋아 모으기 시작한 것이 어느 덧 2천점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 탈뿐 아니라 중국.뉴질랜드.네팔 등 세계 각국 탈을 모았다. 전시품이 다양하다 보니 하회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이 박물관은 마을에 들를 때 반드시 거쳐가는 장소가 됐다.

"탈을 관상학적으로 보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 할미탈은 정수리가 뾰족한데 이것은 박복한 상입니다. 또한 입술이 처지면 낭비가 심한 상인데 실제로 그런 역할로 나오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부녀의 초승달 눈은 바람기.호색기를 말해주는 상이고 미간의 혹은 음성적 성격을 뜻하는 거죠."

탈에 관해서라면 끝도 없이 이야기가 나온다. 하회별신굿 탈놀이에 나오는 탈들을 일일이 설명하는 품새에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탈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탈을 직접 제작하는 장인의 눈썰미를 가진 만큼 탈의 진위를 밝혀달라는 요청도 들어온다고 한다.

한번은 한 재력가가 일본에서 구입해 모 박물관에 기증하려는 탈을 감정하러 갔더니 모두가 가짜였다는 일화도 들려주었다.

하지만 그는 요즘 고민에 빠져 있다. 올해 초 그가 구입한 나무탈 다섯점이 본인의 판단으로는 최고(最古)의 산대 계열탈로 추정되는데 아직 다른 전문가들이 판정을 유보하고 있는 것. 그 연대를 확실히 밝혀내기만 하면 당시의 탈 제작 기법과 모양을 연구할 수 있는 핵심 자료가 될 전망이다.

탈이 있다면 전국 어디든 달려간다는 그는 "우리나라는 탈놀이가 끝나면 탈을 모두 태워 버렸다"며 "좋은 탈이 별로 남아 있지 않고 일본과 달리 장인들이 연도나 이름을 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흔적을 알 길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이 흘러 이름도, 작품도 사라져버린 장인들의 솜씨가 안타깝다고 한다. 박물관 뒤에 차려 놓은 공방에서 작업을 한다는 그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안동을 방문했을 때 그 공방에서 열흘 걸려 정성스레 깎은 하회탈을 선물했다.

그는 "앞으로 하회탈 이미지를 작품화한 조각품의 전시회를 여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글=홍수현, 사진=박종근 기자

*** 가장 오래된 나무탈?

김동표 관장이 구입한 나무탈 다섯점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관장에 따르면 소나무.오리나무로 만들어진 이 탈들은 산대계열 탈로 보이는데 나무의 외양으로 보아 1백50~2백년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송파산대놀이 이수자인 이병옥 용인대 무용학과 교수는 "김동표씨 탈 중 얼굴 표면이 올록볼록한 것(위 사진에서 왼쪽 탈)은 산대탈의 '옴중'으로 보인다"며 "궁중용이라기보다는 탈놀이가 세속화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탈들은 현재로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간주되는 서울대 박물관 소장 산대놀이 탈('양주군 퇴계원리 산대도감 사용 경복궁 조영 당시'라 씌어 있어 186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됨)보다 연대가 앞선 것인지는 아직 확인할 방법이 없다.

나이테로 연대를 추정하는 충북대 박원규 교수는 "조사 가능한 나이테 숫자가 모자라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청사자놀음 보유자이자 연희 연구가인 전경욱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탈이 나온 경로와 지역이 밝혀지고 연대를 알 수 있다면 탈 제작 기술을 알 수 있는 좋은 연구자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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