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청<55>진보당사건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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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진보당사건의 피고인이나 변호인들은 죽산이 양명산에게 보내려했던 이른바 통방 메모의의혹을 1심에서 가볍게 넘겨버린 것을 치명적 실수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1심에선 이 메모는 문제거리가 되 지않았지만 2심과 3심에선 죽산에게 간첩죄를 적용하는 치명적 증거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착수부장이 접근>
사실 죽산의 통방 메모사전은 재판정에선 겉에 나타난 관계자의 진술을 듣는데서 그쳤다.그 진술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지만 그 문제는 누구도 추궁하지 않은채 수수께끼로 묻히고 말았다. 쪽지사건은 세상에 알려진 과정부터 종잡을수가 없었다.
문제의 메모는 3월25에 작성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0일이 지난 4월15일 검찰은 이동분간수부장을 구속했다. 이는 조피고인의 비밀쪽지를 양피고인에게 전해준 간첩방조 및 증거인멸혐의라고 했다.
그런데 사흘후 경찰은 임신환간수부장을 구속하고 문제의 죽산 비밀쪽지는 이동보이 전하려한 것이 아니고 임간수부장이 받아서 전하려 했다고 발표했다.
, 이렇듯 엇갈리는 발표로는 진상을 알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두 간수부장이 재판정에 내세워진 것이 5월19일.
이동현은 재판정에서 쪽지에 대해선 아는바 없다 다만<사실대로 말하라>는 죽산의 말을 양명산에게 전했을 뿐이라고 했다. 통방 메모에 대해 죽산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수사기관에서 양명산과의 간첩접선혐의를 조사 받고 형무소로 돌아온 어느날 임간수부장이 내게 사건의 내막을 캐물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해주었더니<그렇다면 내가 양명산에게 사실대로 말하라고 해줄터이니몇자 적어달라>고 했다. 내가말로 전하라고 했더니 임은<내가 말로 전하면 그가 신용하지 않을테니 염려마시고 여기다 몇자 적어주십시오>그러면서 종이와 만년필을 내게 주었다. 자칫하다가는 양명산 때문에 나도 간첩으로 몰릴 것 같기에 걱정하고 있었는데 진심으로 나를 위해주고 수고해주겠다는 임피고인을 믿고 쪽지를 썼다.』
그런데 임간수부장은 죽산을 동정해 돕고 싶었기 때문에 메모를 받았다고 수사기관에서 진술했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술을 했다.
『조피고인으로 부터 받은 쪽지를 간첩협의의 산증거로 만들기위해 양피고인에게 전달하지 않고 옆집에 사는 모형사에게 전달하려던 차에 발각되었습니다.』 죽산에게 함정을 만들었다는 뜻밖의 진술이었다.
그런데 더욱 큰 의혹은 문제의 「쪽지함정」이 죽산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였다. 임은 죽산의 따님 조호정씨에게서도 메모를 받아내려고 했었다. 조여사의 증언. 『재판정에서 였어요. 방청석에 있는데 임간수부장이 만나자고 해요. 나갔더니 아무말 말고 뒤따라오라고 해요. 충무로의 중앙우체국앞까지 가더군요. 거기서 아버님의 글을 받으라고 해요. 기억이 확실치 않으나 비밀연락문 같은 것이었어요. 잘못되면 아버님이 정말 죄인이되는 거였어요. 딱 잘라 못한다고 했지요.』

<"쪽지는 함정">
신태악변호사는 임피고인에게『무슨 목적으로 호정씨를 함정에 빠뜨리려 했는가』라고 추궁했다. 이에 대해서는 천피고인은 『당국에 보다 유리한 증거를 잡아줄 목적이었다』 라고거침없이 대답했다.
다른 두 피고인 신창균재정위원장, 전세룡조직부장도 쪽지위촉을 받았다고 했다. 신씨는『그무렵 나는 양이 갇혀있는 두방 건너에 있었는데 밥을 날라다 주는자(같은 죄수임)가 양에게 쪽지를 쓰면 전해주겠다고 하기에<나는 양과 면식도 없는데 뭘 쓰느냐>고 거절했지요. 그당시 우리는 독방이었는데 간첩이라는 양의 감방엔 세명이 함께 있어 우리는 양을 믿을수 없는자로 봤어요.』
쪽지사건은 큰 의혹이었지만 그대로 넘어갔다. 함정 메모로 밝혀진데다 메모내용도 간첩의증거가 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랬지만 결심단계에서 이 메모사건을 두고 검찰과 변호인의 해석이 정면으로 대립했다.
검찰은 죽산이 메모을 보내 북괴와의 관계는 부인하라고 강력히 압력을 가함으로써 증거인멸을 꾀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류의 메모에서 나도 부인할테니 당신도 부인하라고 쓸수는 없지않은가. 메모의 마지막 귀절<결사적으로 부인하시오. 그것이 당신의 의무이기도 합니다>라는 말은 북괴와의 관계는 나도 결사적으로 부인할테니 당신도 그렇게 하라는 것으로 두사람간에는 뜻이 충분하고 명백하게 통할수 있는 글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변호인측은 메모의 어디에 간첩의 증거가 있느냐고 했다.
『<당신은 나를 능력껏 도와주었을 뿐이고 당신이 이북에 내왕한 사실은 모른다>이말의 어디에 의문의 여지가 있는가. <무슨 거래쪽지 운운하는 것은 모두 거짓이다. 만년필도 한개다>라는 귀절도 마찬가지다. 메모는 다른 간수의 눈을 피해 황급히 써야했기 때문에 글씨도 엉망이고 문장이 생략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뜻은 밀서내왕이란 있지도 않았고 나더려 북에 만년필을 선물했다고 하는데 한개를 사서 당신에게 선물했을 뿐이잖는가라는 뜻이 명백히 되어있다. 또<결사적으로 부인하시오>라는 마지막 귀절을 문제 삼지만 그 문면 바로 앞에<특무대에서 고문에 못이겨서 한 말은 공판정에서 깨끗이 부인하시오>라고, 쓴 것은 죽산이 양명산이 처한 입장을알고 공판정에선 진실을 말해달라는 호소가 담겨있을 뿐이잖은가』 라는 것이 변호인의 논리였다. 변호인들은 조피고인에게 간첩죄가 있다면 그의 인간으로서의 목숨을 걱정해야지 어찌 정치생명을 걱정하겠는가. 그런 거짓말은 하는 것을 보면 고문을 당한 모양인데 결사적으로 부인해야만 나와 만여명의 진보당 동지들의 정치생명을 건질수있다고 호소한 이메모의 어느 대목에서 이북과 야합밀통 했다고 추측할 근거가 있는가고 항변했다.

<소설 『지하도시』 는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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