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있는 인사와 독립기념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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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완용 같은 매국노가 큰병 한번 앓지않고 곱게 「천수」를 다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참 하늘도 무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연전에 대충 이런 투의 글을 읽고 큰 공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개체로서의 한 인간 이완용은 육체적 고통없이 영화속에 고이 살다갔는지 모르지만 천형이 이를데 없이 준엄했음은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의식속에 살아있는 이완용상이 증명하고 있다.
최근 당대에서는 이와 같은 천형이 묻혀져버리는가 싶던 문제가 집권민정당 쪽에서 제기돼 분분한 논의가 일고 있다.
몇몇 민정당 의원의 문제제기는 일제 때 친일행위자가 독립기념관건립 추진위원회에 버젓이 포함된 것이라든가, 이른바 극일운동에 붓대를 들 수 있느냐는 개탄이었다.
그들의 문제제기는 광복이후 친일행위자에 대한 재단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던 터에 우리의 의식을 분노로 몰아넣고 있는 일본교과서 왜곡사태의 결과로 부각되고 있는 민족사관 재정립과 독립기념관 건립문제에 친일행위자가 「사과 한마디 없이」참여하고 있고 또 사회가 그들의 참여를 허용했다는 자괴지심에 바탕을 두고있다.
한 세대의 시공을 훨씬 뛰어넘은 지금에 와서 누가 친일을 했느니, 그렇지 않느니 하고 문제삼는 것은 사회발전의 에너지를 집약한다는 차원에서 부질없는 일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해방 37년만에 모처럼 국민들의 극일의 의지를 모아 건립하게 된 독립기념관이 지니는 의미를 생각하면 역시 때묻은 사람들은 스스로 사양하는 겸허한 마음을 지녀야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대다수 국민의 심정일 것이다.
일제통치에 대한 우리국민의 응어리진 감정은 그 자체가 친일행위자들에게는 비할 데 없는 천형이어야 하는데, 이 문제에 관해 겸허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위해 또 하나의 불행을 더하는 것이 아닐까.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과거의 역사가 늘 현재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 역사앞에 두려움을 느끼는 분위기를 발전시켜야할 것 같다.
다른 말로 하면 눈이 시퍼렇게 떠있는 인물이나 당대의 사건일지라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객관적 사실로써 평가, 해석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돼야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분위기가 성숙되지 못할 때 역사가 현재에 큰 교훈을 못 미치고 따라서 씻을 수 없는 불행과 비참, 그리고 고통을 동시대인에게 강요하는 인물이나 사건이 활개치고 또 빈발하는 불행을 겪게 된다.
민정당 일부의원들의 문제제기는 그런 맥락에서는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다만 그들의 문제제기가 참된 의미를 부여받기 위해선 현재의 역사도 미래와 끝없는 말을 주고받는다는 이치에 따라 오늘의 상황에도 과거에 못지 않게 눈을 돌리는 슬기와 용기가 절실히 요청된다고 하겠다. <이수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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