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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작은 개미굴이 둑 전체 무너뜨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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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황교안 법무부 장관(왼쪽)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25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정당해산심판 사건 최종변론에 출석해 설전을 벌였다. 재판 시작 전 굳은 표정으로 서로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던 두 사람은 4시간여 동안 진행된 재판 내내 긴장상태를 이어가면서 미소 한 번 짓지 않았다. [강정현 기자]

“통합진보당은 대한민국을 내부에서 붕괴시키려는 암적 존재다. 더 이상 정당해산이란 수술을 주저해선 안 된다.”(황교안 법무부 장관)

 “북(北)의 지령으로 조종당한 적은 전혀 없다. 의혹과 추측만으로 정당을 해산해서야 되겠는가.”(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25일 오후 1시50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황 장관이 굳은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맞은편에 이정희 통진당 대표가 앉아있었지만 가벼운 눈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이어진 네 시간여 동안의 최종 변론에서 두 사람과 대리인들은 팽팽한 설전을 벌였다. 두 사람이 헌재에서 만난 건 지난 1월 말 열린 1차 공개변론에 이어 두 번째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 헌법 8조에 규정된 정당해산의 요건이다.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5일 이 조항을 근거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통진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다. 법무부 측의 ‘통진당 해산’ 주장은 통진당이 위헌 요소를 안고 태어났다는 데서 시작된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내세운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에 참여했던 경기동부연합 세력이 통진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 창당 과정에 개입했고 이후 당권을 장악해 주도세력이 됐다는 것이다.

변론에 들어간 황 장관은 “작은 개미굴이 둑 전체를 무너뜨린다(堤潰蟻穴·제궤의혈)는 말이 있다. 국가 안보에 허점이 없도록 북한을 추종하는 위헌정당을 해산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장관은 이어 “과거 주사파 지하조직이 정당에 침투해 불법과 거짓으로 조직을 장악했고 마침내 통진당을 북한 추종세력의 본거지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정부의 정당해산 청구를 기각해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해달라”고 촉구했다. 이 대표는 “통진당은 소외된 사람들의 꿈을 실현할 통로”라며 “혁명론을 정립하거나 폭력혁명을 꿈꾸고 준비하는 곳이 아니다”고 했다. 법무부 측은 당권을 장악한 이들이 반(反)국가적 목적 아래 활동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당 강령에 북한 대남혁명 전략과 유사한 ‘진보적 민주주의’를 도입했고 이를 바탕으로 혁명조직(RO·Revolution Organization)이 무력에 의한 내란을 꾀하기 위해 지난해 5월 이석기 의원 등이 참여한 ‘내란 음모’ 회합을 했다는 것이다.

 황 장관은 “100명 넘게 모인 통진당의 당원 행사에서 ‘전쟁이 나면 폭탄을 준비해 여기저기 터뜨리자’는 논의가 오고 갔고 여기에 현역 국회의원까지 참여했다”며 “시대착오적인 북한 독재세습 정권을 추종하는 세력들”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법무부가 아무런 근거 없이 위헌 정당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맞섰다. 그는 “2008년 이후 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온 내가 폭력혁명은 단 한 번도 준비·논의조차 하지 않았는데 왜 당이 폭력혁명을 벌일 것으로 무단 추측하느냐”며 “정부 스스로 민주주의와 헌법질서를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변론 과정에서 황 장관과 이 대표는 감성적인 화법을 구사하기도 했다. 황 장관은 “어린 시절 매일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며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고 싶다는 염원을 헌재에서 받아들여 주기 바란다”고 했다. 이 대표도 비정규직 건설 노동자와 장애인 등이 ‘통진당이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고 인터뷰한 내용의 동영상을 5분여간 상영한 뒤 “진보정치를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헌재는 지금까지 제출된 각종 증거를 바탕으로 통진당의 위헌성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다. 선고 시기는 확정하지 않았다. 다만 박한철 소장이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연내 선고’를 언급한 만큼 다음달에 선고할 가능성이 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통진당은 위헌 정당”이라고 판단하면 해산된다.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라는 위헌성 판단 기준을 재판관들이 어느 선까지 적용할지가 관건이다. 전학선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모호한 기준인 만큼 얼마나 엄격하게 적용할지가 통진당 해산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박민제·이유정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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