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언론인·수필가로 여성계 이끌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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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이후 한국 여성계를 이끌어온 수필 문학의 대모 조경희씨가 5일 오전 1시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87세.

고인은 1918년 인천시 강화읍에서 태어나 39년 이화여전을 졸업했으며 같은 해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한 뒤 80년 은퇴할 때까지 4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내가 입사했을 때 조선일보 학예부장은 시인 김기림 선생이었고 나는 문학평론가 이헌구 선생과 가정란을 제작했다. 월탄 박종화 선생의 호령호령하는 큰 목소리, 시인 정지용 선생이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목청을 높여 시를 낭송하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또 명동에 나가면 김억.계용묵.정비석 선생 등 유명 문인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자서전 '언제나 새길을 밝고 힘차게'에서, 2004년)."

고인의 삶엔 항상 수필이 있었다. 그는 대학생이던 39년 잡지 '한글'에 수필 '측간단상'이 당선돼 등단한 이래 '하얀꽃들'(99년) '낙엽의 침묵'(94년) 등 수필집 열 권을 출간했다. 71년 한국수필가협회를 창립해 작고할 때까지 회장을 맡아왔고, 74년 창간한 계간지 '수필문예'는 '한국수필'로 이름을 바꿔 격월간으로 발행되고 있다.

고인은 또 왕성한 사회활동을 펼쳤다. 79년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등을 거쳐 84년 예총 회장에 당선됐다. 예총회장 재임 때 지금의 예총회관을 마련했다.

88년엔 초대 정무제2장관으로 입각하기도 했다. 장관 시절 13개 시.도 가정복지과장을 일제히 국장으로 승진 발령하고,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건립 예산 500억원을 마련했던 일은 지금도 문화예술계에서 회자된다.

이후 고인은 예술의전당 이사장, 한국여성개발원 이사장, 한국예술원 회원 등 말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문학상(75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87년), 프랑스정부 문화훈장(91년), 은관문화훈장(96년) 등을 받았다. 지난달엔 올해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유족으로 아들 홍춘희, 딸 성미씨가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은 9일 오전 7시이며. 이날 오전 10시 서울 대한성공회 대성당에서 영결미사가 열린다. 02-929-6699.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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