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조작·탈세·관리매수·환경오염 등 미 대기업 범죄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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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의 대기업들이 심심치 않게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법을 어기면서 기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5백대 기업가운데 1백15개 회사가 탈법을 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거나 벌금을 물었다.
소비자보호운동가들은 기업들이 가격조작·탈세·관리매수·각종 환경오염 등을 통해 연간 2천억달러에 달하는 정부예산을 축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격조작에서만도 연간 6백억달러가 소비자들에게 뒤집어씌워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기업간부들의 공적인 책임감이 어느 때보다도 낮은 선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에 알려진 몇가지 예를 보자.
▲대형완구메이커인 밀튼 브래들리사는 지난3월 크레용의 가격조작을 꾀한 혐의로 15만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플로 제네럴사의 자회사는 5월 컴퓨터계약을 따내기 위해 발주자인 군을 속이려 했다가 기소되었다.
▲뉴욕 식당들에 과자를 공급하는 6개 주요제과회사들이 6월 가격조작을 함으로써 연방 대배심에 의해 기소되었다.
▲유니버셜 데킹시스팀사는7월 해군에 납품할 75척의 선박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했다가 기소됐다.
그러나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지가 정부기록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더욱 엄청나다.
지난 10년간 5백대 기업 중 12·2%가 유죄판결을 받았고 민사소송으로 벌금을 낸 기업은10·8%에 이른다. 그리고 중소기업까지 합하면 적어도 2천6백90개의 회사가 형사재판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기업중역들이 포함된 범죄활동은 계속 늘고있으나 극히 일부만이 유죄판결을 받거나 기소될 뿐 형무소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한마디로 엄청난 기업탈법이 행해지고 있음에도 유한책임으로 끝나고 있다는 조사결과다.
기업범죄에 연루된 대부분의 경영간부들은 외관상으로는 어엿한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다.
이들은 지역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독실한 신자이며 잘 알려진 각종 모임의 회원이자 명문대학 출신이다.
이런 사람들이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가. 통상적인 동기는 기업의 이윤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이러한 유혹은 기업이 파산에 직면하고 있을 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70년대 초의 국제적 뇌물사건으로 유명한 록히드 항공사의 경우를 보면 최고경영자 두 사람이 3천8백만달러의 비밀자금을 계상, 항공기의 판매를 늘리기 위해 외국관리들에게 뇌물을 뿌리고 다녔다. 그 결과 재정난에 허덕이던 록히드사는 되살아나 3달러로 하락했던 주가가 최근엔 60달러까지 홋가한다.
그러나 이른바 록히드추문이 터지자 회사측은 증회사실을 인정하고 64만7천달러의 벌금을 물은 후 뇌물사건의 주역인 호턴과 코치언을 슬그머니 은퇴시키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던 것이다.
가격담합·증회·탈세 등의 혐의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변명한다.
실제로 70년대 중반 미 법무성은 제지업관계 회사들을 조사한 끝에 가격담합혐의로 1백여 회사를 기소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업범죄는 날로 증가하는데 반해 법과대학이나 경영대학, 그리고 정부나 범죄학자들은 이 문제를 너무 등한시하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기업범죄의 정도를 측정했던 위스콘신대학 사회학과의 마셜·클리너드 교수는 지난 75년부터 2년간 미국의 대기업 중 60%이상이 각종범죄를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지난 10년간의 기업범죄율이 23%로 나타난 US지의 조사와는 현저한 차이다.
이처럼 기업범죄가 늘어나는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기업이나 기업간부들이 범죄를 저지른 후 일반형사범에 비해 가벼운 벌을 받고 있다는데 기인한다.
지난해 루이빌강에 폐수를 흘려보내 연방정수법 위반혐의로 기소됐던 퓨리너사는 수백만달러의 피해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6만2천5백달러의 벌금형을 받았을 뿐이다.
또 78년 이집트 정부관리에게 뇌물을 바친 혐의로 기소됐던 웨스팅하우스사 역시 뇌물증여의 결과로 성공한 계약액 3천만달러의 l%에 불과한 30만달러의 벌금만을 물었던 것이다. 기업범죄를 부채질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기업이 회사를 위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철저히 감싸주고 보살펴주는 것을 들 수 있다.
이같이 기업범죄가 점점 사회문제화 되자 많은 기업들, 특히 말썽에 휘말렸던 기업들은 윤리강령을 채택하고 연수계획을 세움으로써 기업범죄를 막으려 하는 것도 사실이다.
전자부문의 ITT사는 회사정책을 알리는 상세한 유인물까지 만들고 서독과 오스트리아의 자회사종업원들을 위해 독일어로 번역, 주지시킨다.
또 가격담합으로 혼이 난 인터내셔널 페이퍼사는 「가격」이란 제목의 영화를 제작, 종업원에게 보여줌으로써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 시도하고 있다.
몇몇 기업들 중에는 모의재판을 개최, 회사간부들을 증언대에 세워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도록 함으로써 반트러스트법을 어기는 일이 없도록 훈련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체교육이나 정부의 단속이 아무리 강화된다 해도 지난 30년대의 대공황이후 가장 파산율이 높은 요즘인 만큼 「파산」과 「범죄」의 갈림길에서 살아남기 위해 범죄쪽을 택하는 기업과 기업인은 줄어들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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