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막바지'벼랑끝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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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김계관 6자회담 수석대표가 4일 베이징의 북한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대표는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면서도 북한에 평화적 목적의 핵 이용권이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로이터=연합뉴스]

잔뜩 찌푸림. 5일 베이징 제4차 6자회담의 분위기다. 전날 큰 고비를 넘긴 때문일까. 차분함 속에 탐색전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회담장인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는 북.미 차석대표 협의가 있었다. 수석대표 접촉은 아니었지만 북.미는 이틀 연속 머리를 맞댔다.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수석 대표는 한때 "그들(북한 대표단)을 만날 필요를 못 느낀다"고까지 했었다. 그런 점에 접촉은 작은 진전이었다.

파국을 막기 위해 긴급 소집된 전날 남.북.미 회동의 결론은 '본국과 협의를 거쳐 다시 협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 측 회담 관계자는 "아직 훈령이 온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오전 접촉은 탐색전에 그쳤다. 북.미 대표는 직접 만나지 않았다. 대신 한국을 매개로 간접 접촉만 했다.

회담은 앞이나 뒤로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도는 모양새다. 당연히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전날 밤 힐 대표는 "공동 성명이 나오지 못하면 어떤 수준의 성명을 내야 할지, 회담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부정적인 얘기다. '휴회(休會) 선언'으로 피해 가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한.미는 꺼린다. 북한이 일단 돌아가면 언제 회담장에 복귀할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힐은 이날 합의문의 '명료성'을 강조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척, 미국은 믿는 척'하는 합의문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해석이 다를 수 없는 명백한 합의문"이 톰 케이시 국무부 부대변인의 말과 일치하는 워싱턴의 공식 입장이다.

반면 우리 측 송민순 대표는 "합의문의 창의적 모호성도 불가피하다"고 했다. 분명한 방식으로 타협이 안 될 때는 모호한 표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미 간의 온도차가 느껴진다. 6개국 모두 "회담을 계속한다(keep going)"고 뜻을 모았지만 미국 대표 힐은 그다지 유연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 회담 관계자는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빼닮은 힐 특유의 협상 방식 때문"이라고 했다. 상대방의 태도를 보며 카드를 밀고 당기는 게 아니라 회담 초반 줄 수 있는 카드를 모두 내놓고 그 안에서 결판을 내는 방식. 중동평화협상 때 주목받은 키신저 식 협상론이다.

이 때문에 처음엔 잠정 합의문을 받아들여 모두 수용하는 듯 하다가 다시 근본적인 문제를 들고 나오는 북한과는 대화 여지가 작을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번 회담 초반 때 힐은 '북핵만 해결되면 뭐든지 다 준다'는 식으로 나왔다고 한다. 이때 러시아가 "무조건 받아라. 이 가격에 안 사면 후회한다"며 북한을 설득한 것은 힐의 협상 방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서울=최상연, 베이징=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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